완성된 초상화

한·일을 잇는 우정의 강물

by 한우물

Dear Dr. Han,


그들이 없는 생활은 우리에게 다소 수월해졌지만,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1979년 후쿠오카 일미시장회의(Japan America Mayor’s Conference)가 개최되었을 때 통역 시험에 합격하였고 그 자극으로 영어에 더욱 흥미를 느껴 몇 년 내에 국가 공인 영어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양갓집 아내가 밖에 나가 일하는 것은 금기시하던 때라 아버지 역시 아내가 여행 가이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못마땅해했지만 결국 허락하셨고, 그 이유에 대해 나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이해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치르는 영어 시험 중 가장 어려운 시험을 아내가 통과했다는 사실에 감동받은 데다 그동안 가장으로서 가족을 보호해 주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으로 아내와 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라고요.


바로 그때, 어머니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적기에, 한 선생님 일행을 만나게 되었고 어머니가 여러분들을 집으로 모시고 싶다는 말에 아버지 역시 오랜만에 아내가 하는 부탁을 들어주게 되어 기꺼운 마음으로 맥주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손님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내적으로 다소 복잡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행복을 느끼는 일에 서툴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히 젊은 시절, 어머니를 도와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가려내고 그녀의 부정적인 생각을 처리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남들로부터 성공한 개원의의 행복한 아내로 취급받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았으며, 그와 동시에 자신의 불행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도 없었고 자신이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대상은 딸 하나뿐이었습니다.


부모를 떠나보내는 딸로서는 어머니가 통증이나, 고뇌나, 울분 없이 평화롭게 임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었습니다. 내 어머니가 수십 년 전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은 자신의 생을 평온하게 마감하기 위해서였나 봅니다.


Thank you, Dr. Han!



- 그녀는 58세에 서른일곱 살의 준혁을 만났고, 70세가 되던 2001년에 남편이 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그 후 그 집에서 큰딸과 함께 16년을 살다가 87세의 일기(一期)로 생을 마감하였다. -


편지를 다 읽고 난 준혁은 그제야 퍼즐 조각이 모두 맞춰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끝까지 이해되지 않던 몇 가지 의문이 풀리고 나니, 비로소 나까무라 게이꼬(中村京子)라는 한 인물의 진면목이 확연히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