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꼬의 가슴 아픈 과거

한·일을 잇는 우정의 강물

by 한우물



"레이꼬 씨, 어머니 게이꼬 씨를 기리는 의미에서 30년에 걸친 우리의 우정을 글로 써 남기려 합니다. 동의해 주시겠는지요?"
"물론입니다. 저희가 오히려 영광이지요."


"그런데, 한 인물을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대략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게이꼬 씨의 과거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심지어 그녀의 나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이 공백을 레이꼬 씨가 메워 줄 수 있겠는지요?"


위의 대화는 준혁이 게이꼬의 문상을 하고 돌아온 지 6개월 후에 레이꼬와 메일로 주고받은 내용이다.

이에 레이꼬는 흔쾌히 동의했고, 남들 앞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족사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솔직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1932년, 요꼬야마(横山市, 요코하마)의 한 부유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남부럽잖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는 동경제국대학 출신으로 슬하(膝下)에는 2남 2녀를 두었고 집안에는 상주(常住) 하인 2명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나의 외할머니와 아버지는 사촌간으로서 두 사람은 서로 오래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였지요. 이런 연줄로 인해 나의 어머니는 친척인 아버지를 소개받아 결혼했습니다.

제가 이런 사실을 자세히 밝히는 이유는 딸의 입장에서 볼 때 엄마 아빠가 서로 친척 간이란 사실이 엄마와 우리 가족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꼬야마란 대도시에서 부유했던 어머니 가족과는 달리, 규슈 지방 시골 출신의 아버지 가족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대를 이어오는 동안 의사, 농부, 공무원을 배출하면서 그들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는 나름대로 존경받았지만 자유로운 도시문화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친할머니와 고모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 어머니의 가족에 대해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외갓집은 대도시의 좋은 집에 살면서 멋진 옷을 입었고 당시에는 아주 귀한 피아노도 있었으며 외할아버지는 동경제대 출신에 큰 기업에서 일했을 뿐 아니라 소작농을 둔 대지주(大地主)이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8살 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개혁과 혼돈의 시간 동안 내 어머니 쪽 가족은 그들이 가졌던 부의 대부분을 잃게 되었으며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집안은 몰락했습니다. 어머니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외할머니를 도와 형제들 부양에 나서 남자 형제 둘은 대학까지 보냈으나 정작 본인은 항상 배움에 목말라 있다가 고교 졸업 후 회사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야학으로 대입 준비를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결혼할 때 엄마는 자신의 어머니와 세 명의 동생을 둔 가난한 여사무원이었습니다. 이런 엄마의 처지에 대해 아버지는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친할머니와 고모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그런 처지에서 시집온 엄마에게 완전히 눈을 내리깔고 혹독하게 대했습니다. 그들은 엄마에게 가난뱅이 집안 출신이라거나, 양갓집 규수는 결혼 전에 밖에 나가 일하는 법이 없다 라는 등의 말을 끊임없이 했고 심지어 나와 동생이 듣는 데서도 서슴없이 해댔습니다.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것이 이 집안의 법도라고 이해했습니다.


최악의 사태는 친할아버지가 구마모토의 한 작은 섬에 있던 병원을 접고 이곳 후쿠오카로 옮겨오면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나는 열세 살이었는데 마치 식모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순간부터 내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시부모와 시누이들의 하녀로 존재하였으며 매일 그들에게 저녁상을 차리는 등 많은 시간을 그들 시중드는 데 보냈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나와 동생과 엄마가 먹을 밥과 반찬을 만들어 놓고 엄마가 그 노동을 끝내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저녁 식사를 우리와 하지 않고 할아버지 댁 식구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혼자서 영어 공부를 계속했는데 아버지는 그 사실을 할머니나 고모들에게는 숨겨야 했습니다. 이런 미친 생활은 5년이나 계속되다가 내 나이 18세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모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후 끝이 났습니다.



첫 편지는 그렇게 끝났다.

'그렇게 단아하고 우아한 부인이, 아무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내과 원장 사모님이, 그런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니!'

준혁은 편지를 읽는 내내 못내 가슴이 아파왔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음 편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