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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Nov 06. 2022

삶07 경찰의 품격(上)

생각을 담은 그릇

경찰서에서 온 전화


# 2014-09-03 수요일, 추석 5일 전.


"따르릉~~~"


처음 보는 전화번호라 안 받으려다가 마침 한가한 시간이라 받았다.     

"한나영 씨 되시죠?"

"그렇습니다만."


"아~~ 저는 신부산경찰서(가칭) 교통관리계 김갑동(가명) 경위인데요."

"그래요?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올 상반기 동안 선생님께서 교통법규위반 신고를 가장 많이 해 주셔서 감사의 뜻으로 추석 선물을 드리려 하니 경찰서로 한 번 왕림해 주시지요."

"나는 만덕에 사는데요?"

 

"국민신문고 인적 사항에는 우리 경찰서 담당 지역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만..."

"아~, 내가 주소지를 직장 주소로 등록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그러니 마~ 선물은 관할지역에 사는 분께 주시지요."


"그래도 본서에 등록된 분이라 북부서에서는 연락이 안 올 것이고, 또한 저희 서에서 성의를 표시하고자 하는 거니까 받아주시지요."

순간, 남의 성의를 너무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다음날 점심시간에 들리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 시간, 아내에게 오늘 경찰서에 선물 받으러 간다니까 아내가 펄쩍 뛰었다.

"그런 것 뭣 하러 받아요? 그리해서 당신 이름이나 사진이라도 어디 실리면 어떡하려고?"


안 그래도 그동안 아내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 위반차량이 보이면 "부산 00마 4569, 신호위반, 온천 사거리, 2014년 10월 20일 10시 20분." 하면서 소리 높여 녹음할 때마다 "아이고, 이 험한 세상에 나중에 무슨 봉변당할 줄 알아서 그런 위험한 짓을 해요? 마~ 그만 하소!" 하면서 걱정을 하던 아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허이, 그런 것 겁나서 범법행위에 눈감으면 세상에 어떻게 정의가 바로 서겠소? 그리고, 내 신분 노출될 위험은 거의 없으니깐 걱정 마시라요."라며 넘겨 왔는데, 이제 그 일로 상까지 받는다 하니 내 신분이 경찰신문이건 어디건 날까 봐 아내가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병원에 출근해서 부랴부랴 오전 환자 다 보고 난 후 안 팀장에게 "안 선생, 오늘 나하고 경찰서에 좀 같이 가야 하니 내 차 좀 빨리 빼 오셔.” 하고 오더를 내렸다.     


내가 그를 데리고 가려 한 이유는 추석 선물이라면 아무래도 과일 같은 먹을 것이 될 가능성이 많고, 그리되면 부피가 크고 무거워 내가 들고 오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경찰서 앞마당은 아주 좁았다. 

주차장은 지하인 모양인데 다행히 한쪽 구석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하나 있어 오른쪽으로 차를 틀려는 데 경찰서 건물 입구 중간에 겁도 없이 길이대로 주차해 있는 차가 한 대 있어 몇 번 을 꺾어서 겨우 주차했다. 

나 혼자 왔으면 하지도 못할 뻔했다.


건장한 체격에 준수한 인물의 듬직한 안 팀장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보무당당히 민원실로 들어갔더니 마치 은행 창구처럼 기다란 칸막이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한 여경이 어떻게 왔는지 묻길래 김갑동 경관님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때 마침 한 남자 경찰관이 들어오는데 그녀는 그를 향해  "오빠! 누가 찾아왔는데요." 한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한나영 씨인지 묻고는 따라오라 햤다.     


그를 따라 복도 끝까지 갔더니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 하고는 자기 혼자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구석 바닥에 쌓아 놓은 물건들을 주섬주섬 뒤고 있는데, 책상에 앉아 있던 한 늙수그레한 경찰관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신고하면 내가 피고발인 불러서 스티커 끊고 훈계하고 다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는 사이, 앞의 경찰관이 종이박스에 든 물건을 하나 들고 와 나에게 건넸다.

그러자 그 경관이 다시 "그거 등산용 배낭인데 아주 고급이라요." 하며 생색을 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참으로 황당했다.


"야이 쌍!@ 이런 식으로 할 것 같으면 그냥 우편으로 부쳐주지. 뭐 대단한 것 준다고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해? 지금 장난치나?"




건물 밖으로 나와 차를 빼려니 좁은 공간에서 후진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놈의 차가 아직 가로막고 있어 또다시 몇 번이나 핸들을 틀어야 했다. 


입에서 욕이 나왔다.    

  

"에이 쎄빠질 놈. 도대체 어떤 놈이 저런 데다 차를 대 놓은 거야? 그러고, 이노무 서의 경찰들은 모두 당달봉사가? 저런 걸 가만 놓아두게!"


겨우 정문을 빠져나와 차를 샛길로 돌려 나가려니 이번에는 담벼락에 형사기동대 봉고가 가로막고 있어 또 차를 몇 번 틀어야 했다. 


재수 옴 붙은 날


상 받는다고 기분 좋게 왔다가 완전히 기분 잡치고 말았다.

아무튼, 밥은 먹고 들어가야지.


내 개인적인 일로 수고를 끼친 안 선생에게 맛있는 점심이라도 사 주려고 지갑을 찾으니 이번에는 또 지갑이 없어요. 안 선생에게 돈 좀 빌리자 말했더니 그도 호주머니를 뒤져보고는 지갑을 안 가지고 나왔단다. 

환자 때문에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나오다 보니 둘 다 미처 지갑을 못 챙겨 온 것이다. 

    

배는 고파 죽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단골집에 가서 점심 한 그릇 먹고 외상 달아놓자 하기도 쪽팔리고. 에이, 마~ 딱 돌아가시겠다.


"할 수 없다. 병원에 가서 중국집에 시켜 먹자. 초음파실에 전화해서 다들 식사 안 했으면 같이 먹자고 해라. 요리도 좀 시키라 하고…."     


초음파실과의 통화 후 안 팀장이 하는 말. 

"교수님, 모두 식사했답니다."


"나 이거 원, 밥 못 먹어 죽은 귀신이 있나 지금 몇 신데 밥을 다 먹어? 그런데.. 두 사람 먹으면서 요리까지 시킬 수도 없고..."     


"교수님 뭐 드시겠습니까?"

"간짜장!"


"저는 곱빼기 시키겠습니다."

"그럼 만두 하나 추가!"


부슬부슬 비는 내리는데, 배는 쪼르륵거리는 데, 밥도 못 먹고, 도대체 이거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참, 이래 저래 재수 옴 붙은 날이다.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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