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우물 Nov 07. 2022

생사삶 08 경찰의 품격(中)

생각을 담은 그릇


앞통수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에피소드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방금 있었던 일을 떠 올리면서 '우리나라 경찰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이 들도록 했을까?


1) 경찰서 앞마당의 불법주차

그 좁은 경찰서 앞마당에 주차 공간이라고는 구석에 있는 장애인 자리 하나뿐이다.

경찰서 입구 초소에는 항상 경찰관이 지키고 있다. 

그런데 어떤 간 큰 민원인이 경찰서 본관 입구를 막고 무단주차를 해 놓을 수 있겠는가?

그게 아니면, 도대체 누구 차이기에 초소 경관이 묵인하고 있을까?

 

이 두 가지 경우수를 다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경찰서장 외엔 없다.

그럼 왜 그 시간에 그렇게 대 놓았을까? 

아마도 서장님께서 출타하신다고 잠시 미리 대기시켜 놓았겠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서장이 출타한다면 서장 나가기 5분 전에만 비서실에서 연락해도 얼마든지 높으신 양반 기다리지 않고 타고 가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차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내 차가 초소를 통과해 들어와서 경찰서를 완전히 빠져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최소한 15분이었다. 

 

그리고 그 차는 내 차가 주차하고 빠지는 데 아주 많이 방해가 되었다.

운전이 능숙한 안 팀장이기에 망정이지 나 혼자 왔으면 옳게 대지도 못할 뻔했다.

이 차가 방해가 되는 게 어디 차량뿐이겠는가? 

그 시간에 본관 건물을 출입하는 모든 사람이 그 차를 돌아서 가야 한다. 

그 정도면 문제 있는 것 아닌가?

 

2) 호칭 문제

내가 민원실로 들어갔을 때 여자 경찰관이 남자 경찰관에게 ‘오빠’ 라 불렀다.

경찰서가 무슨 술집도 아니고 오빠가 뭐냐? 오빠가!


그들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다.

제복을 왜 입나? 자신의 신분을 남들이 한눈에 알아보고 알아서 기라고 입는다. 

그들의 신분이 무어냐? 경찰관이다. 경찰이 무어냐? 국가의 공권력이다.


즉 경찰복은 그 자체가 국가 공권력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옷을 입은 사람은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권위가 선다. 

헌데, 자신의 동료나 상관을, 그것도 민원인 앞에서 ‘오빠'라 불러서야 어디 권위가 서겠는가?

 

비록 두 사람이 평소에 오빠/동생 하는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그런 말은 밖에서 (경찰) 옷 벗고 둘만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지 제복을 입고, 그것도 경찰서 안에서 쓸 말은 아닌 것이다.


3) 의전(儀典)의 무시 내지는 의전에 대한 무지(無知)

내가 거기 왜 갔나? 

내게 감사해서 선물 주겠다고 지네들이 불러서 간 것 아닌가?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손님이다.

그렇다면 손님 접대는 못 하더라도 손님 대접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면 당연히 안으로 모셔서 차라도 한 잔 대접하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차는 고사하고, 손님 불러 놓고 들어오란 말 한마디 없이, 장애인인 나에게 앉으라고 의자를 건네기는커녕 칸막이 밖에다 세워 놓고, ‘자신들은 일처리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 ‘선물이 아주 고급이다.’는 둥 지네들 공치사만 했다.


어디 그뿐이랴?

국가기관에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선물을 증정한다면 절도 있게 차렷 자세로 서서 두 손으로 건네고 악수라도 해야 하거늘, 이건 마치 출옥하는 죄수에게 사물 건네듯 칸막이 위로 한 손 내밀어서 물건 하나 쓱 건네주곤 끝이다.


그것만 그랬다면 말도 안 한다.

선물 준다고 사람 불러다 놓고, 그것도 시간 약속까지 해놓고, 그 선물 미리 챙겨 놓지도 않고, 받을 사람 보는 앞에서, 그것도 캐비닛 안에서 꺼내는 것도 아니고, 사무실 구석 바닥에 쌓아 놓은 물건더미 주섬주섬 뒤져서는, 종이상자 하나를, 포장도 안 한 채로 건넨다. 마치 극빈자에게 구호품 전달하듯.


내가 손님 맞나?

내가 국가 법질서 수호에 공헌한 유공자 맞나?


뒤통수


그 늙수구리 경찰관이 고급이라고 생색내던 이 배낭.


등산도 못 가는 내겐 필요 없는 물건인지라 아들 줄 거라고 서울까지 들고 가 "아빠가 상 받은 물건인데 고급이란다." 하면서 생색내며 내놓았다.


그랬더니, 때 마침 그 집에 놀러 와 있던 코오롱에 근무하는 처조카가 배낭을 보고선 웃으며 하는 말. 


"ㅋㅋㅋ 고모부, 이거 매장에서 파는 물건 아니네요"


"오잉? 그럼 뭔데?"

 

"그냥 직원들에게 한 번씩 공짜로 주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


"매장에서 파는 정상제품에는 'KOLON SPORTS'라는 로고가 붙는데, 여기에는 'KOLON INDUSTRIES'라 붙어있잖아요! ㅋㅋㅋ" 

 

우리 아들이 가방을 들어 보이며 배를 잡고 웃는다.

 

조카가 하는 설명에 따르면, 

제조사 측에선 제품 중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상품가치에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물건들은 팔지 않고 모아다가 직원들에게 선심 쓰거나 사회단체에 기부를 한단다.

 

경찰서에서 앞통수 맞고,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서울까지 가서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사삶 07 경찰의 품격(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