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나는 졸업할 때까지 그 선배에게서 수업을 받은 적도, 두 번 다시 부딪힌 일도 없었다.
재회
내가 전문의를 따고 첫 직장으로 00 의대에 부임해 오니 그 선배는 다른 과 주임교수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초의학 쪽이라 학교에서 근무하고, 나는 임상 쪽이라 병원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서로 만날 일은 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수와 병원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그는 나와의 옛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반갑게 맞았다. 그때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십수 년 전, 자신이 나한테 가한 모욕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잊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그에게 그런 일은 하도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나는 일이라 기억할 리 없겠지.
하지만 대학시절. 의대 보칼팀의 싱어로서 의과대학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나와의 일을 과연 잊었을까?
그 일로부터 15년 후
당시 우리 대학은 아직 신생대학 축에 속하다 보니 학교 입장에서는 어떡하든 의사국가고시 합격률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리하여 국가고시를 한두 달 앞두고 본과 4학년을 상대로 의사고시 대비 보충수업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한마디로 족집게 과외를 하라는 것인데 내 성질에 이런 게 맞을 리 없다.
나는 내게 주어진 1시간짜리 수업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학이 무슨 입시 학원도 아니고, 나는 너희들에게 강의할 것 다 했고, 공부는 너희가 하는 것인데 내가 뭐 한다고 또 강의를 하겠노? 솔직히 말해서 너희도 이런 수업 하기 싫지? 자~ 다들 노트 덮고 이제부터 편안하게 내 이야기나 들어라.”
그때부터 나는 학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 의사가 지녀야 할 소명의식과 마음가짐 등에 대해 설파를 하던 중 나의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와 양념 삼아 그날 내가 겪었던 사건에 대해 말했다.
당시 비록 주니어 스테프 신분이었지만, 그때 이미 나는 내 전공분야에서 최고봉까지 오른 데다 명강의 교수로 명성을 쌓은 터라 학생들에게 나는 일종의 우상같은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학창 시절 화장실에서 오줌 누다가 머리 길다고 그런 꼴을 당했다는 사실이 당시의 학생들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지 다들 어리벙벙해하길래 나는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그때,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들어댄 사람이 누군 줄 아냐?”
?????
“바로 우리 대학 PM과 K 교수다!”
학생들은 상상도 못 한 반전에 모두 포복절도(抱腹絶倒)하여 온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 웃음은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학생들로서는 현재 자신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 두 사람이 젊은 시절 그런 일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였다는 사실이 평소에 두 교수가 보여준 카리스마 작렬의 캐릭터와 도무지 매칭이 되지 않아 더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몇 년 후, 그 교수는 부산에 생긴 후발(後發) 신생 의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거기서 여러 가지 큰일을 해내고 그 대학에서 정년퇴임했다.
그 일로부터 40년 후
내 나이가 어느덧 60줄에 들어선 어느 날, 한 선배 교수의 정년퇴임식에 참석코자 그랜드 호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한 사람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와 닫히려는 문을 밀치며 탔는데 바로 그 선배였다. 그는 나를 보자 한 손을 들고 “여어~~ 한 교수 아니요?” 하며 진정 반갑게 인사했다.
40년 전, 나를 머리 긴 짐승 취급했던 사람으로부터 깍듯이 교수 대접받고 보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싶으면서 기분이 참 묘했다.
서로 얼굴 본 지 20년도 더 넘었다.
나도 반가운 마음에 “아이구,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시지요?” 하고 인사했다.
그는 나보다 여덟 살이 많다.
정년퇴임 한 지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늙은 티는 없고 몸이나 얼굴이나 여전히 정정한 선배의 모습이 참 보기좋았다.그런 선배를 보자 어쩌면 내가 더 늙어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이 났다.
50년 후
이제 그로부터 꼭 50년이 지났지만 그날 일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하지만 의미는 달라졌다.
그때는 치욕에 몸을 떨었지만 지금은 그저 싱긋이 웃음만 나오면서 그런 추억을 제공한 그 선배가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진귀한 에피소드로 인해 15년 후엔 학생들을 뒤집어지게 웃겼고, 50년 후엔 이렇게 글로써 여러 사람 즐겁게 만들어주며 내 인생을 보다 풍성하게 해주니 말이다.
그때 일을 회상하며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음과 같은 '찰리 채플린'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