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15 단소리를 듣는 귀, 쓴소리를 듣는 귀

귀가 둘인 이유 4

by 한우물


당태종과 쓴소리


당태종(唐太宗)으로 알려진 이세민(李世民)이란 사람은 당나라 2대 황제로서 23년간 재위(在位)하면서 당 왕조 300년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지닌 명군으로서의 중요한 자질 하나는 그가 바른말하는 신하를 옆에 많이 두고 그들의 충언(忠言)을 항상 경청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입바른 신하 중에서도 대표적 인물을 들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위징(魏徵)이란 사람을 꼽는다.

당태종이 그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였는지는 그가 죽었을 때 태종이 슬퍼하며 한탄한 다음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과거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이해득실을 알 수 있다.

짐은 늘 이 세 개의 거울을 가지고 나의 잘못을 고치고 예방하였다.

지금 위징을 잃었으니 거울 하나가 없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바른말하는 신하를 끔찍이 아낀 당태종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그의 쓴소리가 무지하게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한 번은 태종이 정말 화가 나서 멀건 대낮에 황후 전에 씩씩대며 들어와
“이놈의 시골 영감탱이 내 죽여 버리고 말겠다.”라고 하자 놀란 황후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위징이란 영감탱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알기에 어디 그따위로 조정에서 나를 모욕한단 말이오?!”

그러자 황후는 밖으로 나가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와서 태종에게 큰절을 올렸다.


황후의 갑작스런 행동에 태종이 영문을 몰라

“아니 갑자기 큰절을 왜 하시오?”라고 묻자

황후 왈,

“천자(天子)가 명군이면 신하가 바른말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위징이 폐하에게 그렇게 거리낌 없이 직간 할 수 있다는 것은 폐하가 그만큼 명군이시란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신첩이 어찌 축하의 절을 올리지 않을 수 있으리까?“


이 말을 들은 태종은 아주 흡족해 위징에 대한 미운 감정이 금방 사라졌다 한다.

그 남편에 그 아내다.

당태종이 명군으로서 두고두고 중국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까지에는 좋은 신하들뿐 아니라 이렇게 현명한 아내가 그의 옆에 있었던 것이다.


단소리의 쓴맛


그러던 위징이 죽었다.
위징이 죽자 그동안 위징의 그늘에 가려 있던 여러 신하의 충성경쟁이 시작되고 위징의 쓴소리 난 자리를 단소리가 점점 매워간다.


단소리 감언(甘言), 그중에서 가장 효험(效驗) 있는 감언은 무얼까?

그것은 주군이 좋아할 만한 것을 꼬드기는 것이다.


당태종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고구려 정복이다.

이는 비단 당태종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중국의 모든 지도자의 변함없는 염원이다.


그들의 꿈은 한반도를 정복하여 중국 대륙의 동쪽 지도를 완성한 후, 한반도란 날카로운 부리를 갖춘 거대한 중국새가 힘차게 날아올라 그 부리로 일본을 콕 찍어 삼키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세계를 쟁패하여 중화(中華)의 야망을 이루는 것.

우리는 이러한 그들의 야욕(野慾)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고구려 정복의 야망을 제일 먼저 행동에 옮겼던 나라는 수(隋)나라다.

한(漢)나라 이후 360여 년간 혼란의 시기를 겪던 중원 땅을 평정하고 통일제국을 건설한 수나라.


하지만 그 나라는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100만이란 어마어마한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다가 50-60만이나 되는 병사를 잃고 건국 후 40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망하고 말았다.


그런 수나라를 접수한 후 주변국들을 다 복종시키고 대당제국(大唐帝國)을 이룩한 당태종.

그의 마지막 남은 과업은 그런 그들에게 끝까지 머리 쳐들고 맞먹으려 드는 고구려를 정복하여 사무친 수나라의 원한을 갚고 제국의 꿈을 완성하는 것.


하지만 그 야망 슬그머니 드러냈다가, 고구려를 함부로 건드렸다간 나라가 망한다며 입에 거품 물고 달려드는 위징의 반대에 부딪혀 그 후로 다시는 입도 벙긋 못했던 당태종.


그런 위징이 죽었다.

안 그래도 못 이룬 야망이 속에서 꿈틀거리는 마당에 그 야망을 부추기는 신하들의 소리는 초콜릿 같은 단맛으로 그의 귀에 녹아들었으리라.


AD 644년, 위징의 무덤에 풀도 채 안 마른 해에 당태종은 고구려 침공을 명하고 그다음 해인 645년에는 친히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에 나선다.


하지만 안시성주(安市城主) 양만춘과, 죽기로 각오하고 하나로 똘똘 뭉친 고구려의 군관민(軍官民) 앞에서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위대한 황제 당태종마저 패장(敗將)이 되어 퇴각하고 만다.


그 후 그는 전투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과 쓰라린 마음의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4년 뒤인 AD 649년 51세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탄식했다.

“만약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이런 무모한 전쟁은 벌이지 않았을 텐데.”


귀가 둘인 이유


초콜릿은 뇌에서 세로토닌과 카테콜아민 같은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해 일시적으로 기분 좋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안정감을 높여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단맛에 빠지다 보면 비만, 당뇨, 심혈관 질환, 그리고 이들 질환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질병으로 우리의 건강을 망치게 된다.


단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고통과 고난에 힘들어하는 사람, 상실의 아픔과 실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의 단소리는 사람을 살리는 명약(名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단소리에 오래 취하다 보면 쓴소리는 듣기 싫어지고 결국은 한쪽 귓구멍을 막아버리고 만다.


요즈음이 바로 그런 시절인 것 같다.

충고(忠告)나 고언(苦言) 같은 단어는 아예 금기어(禁忌語)가 되다시피 한 세상.

심지어 부모가 자식에게, 의사가 환자에게조차 쓴소리 한마디 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약 한 달 전, 초고도비만에 중증지방간이 있는 40세 남자환자의 초음파 검사를 끝낸 후 건강 상담을 해주기 위해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앞으로 큰일 난다.”라며 운을 뗐다가 호되게 당했다.


그가 나에게 한 말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겪어보고 내가 느껴야 되는 거지, 의사인 당신이 말한다고 내가 고치겠냐? 그러니 그런 소리 내 앞에서 함부로 하지 마라.」


나는 사과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그때는 이미 늦은데. 그래서 그런 일 당하기 전에 고치는 비법을 알려주려고 한 말인데...

그래, 니 잘났다. 내 입 다물께. 앞으로 주~ㄱ 니 쪼대로 살아라.」


그 후로, 환자와는 입 안섞기로 했다. 언제까지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입이 있어도 말 못 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이 세상.

희극으로 봐야 할지 비극으로 봐야 할지?


이 시대야말로 귀가 둘인 이유를 깊이 성찰해 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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