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13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라

귀가 둘인 이유 2

by 한우물
아내의 잔소리와 남편


복지재단 '사랑의 전화' 사회조사연구실에서 결혼 한 남자들이 아내에 대해 가지는 여러 가지 생각들에 대해 설문 조사하였는데 그 첫 번째 문항이 “당신은 어느 때 아내 곁은 떠나고 싶습니까?”였다.


그 결과 “잔소리할 때”라고 응답한 비율이 45%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를 보면 어느 집안에서나 남편을 향한 아내의 잔소리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인 모양이다.


한 소설가가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보약을 먹일 생각하지 말고 잔소리를 끊겠다는 생각부터 하라. 그 순간부터 온 집안에 사랑과 활기가 넘칠 것이다. 올래!”


그랬더니 한 여자 정치인이 다음과 같이 답글을 달았다.

“남편들이여! 아내 말씀 받들어 인생에 손해 볼 일 없도다. 잔소리를 보약으로 생각하시라.”


둘 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아내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어떤 약재를 섞느냐에 따라 그 약이 보약이 될 수도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과 이 세상 남편들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보약이든 독약이든 '마누라 잔소리'란 이름의 탕제(湯劑)는 마시기 싫어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다 같이 잔소리란 이름이 붙은 탕약인데 어떤 것은 보약이 되고 어떤 것은 독약이 되는 걸까?

그것을 감별하는데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그 약효를 두고 보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 약이 얼마나 마시기 싫었으면 늙고 병든 몸으로 집을 뛰쳐나가 객사(客死)를 선택했을까?

그것만 보아도 그동안 그가 마신 탕(湯)은 독약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면 잔소리란 탕 안에 들어가는 재료 중 어떤 소리는 약초(藥草)가 되고 어떤 소리는 독초(毒草)가 되는 것일까?


남편의 건강문제, 사회생활, 인간관계, 나쁜 습관 등이 걱정되어 하는 잔소리는 약초에 가깝고

자신에게 끼치는 불편함 내지는 피해에 관한 잔소리는 좀 아리까리(애매)하고


제 성질을 못 참아 내뱉는 말, 바깥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나치게 간섭하는 말, 시집 식구를 비하하는 말, 변할 수 없는 타고난 단점을 계속해서 지적하는 말,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 등은 독초에 가깝다.


그러니 아내들이여 자신이 만드는 탕약에 약초와 독초가 어느 정도 비율로 들어가는지 잘 따져보고 먹여라. 남편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약초를 많이 넣고, 병에 걸려 빨리 죽기를 바란다면 독초가 듬뿍 든 잔소리탕을 매일 마시게 하라.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은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도 환자가 받아내지 못하면 안 주느니만 못한 법이니 남편의 기력이나 저항력이 얼마나 되는지 보아가며 그 양과 횟수를 잘 조절해야 할 것이다.


잔소리탕을 받는 자의 자세


그러면 남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좋은 건, 약초를 타든 독초를 타든 잘 견뎌내면서 저항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역시 세계 삼대 악처(惡妻) 중에 한 이름 올린 사람인데 이 여인에 비하면 톨스토이의 아내는 한 수 아래다.


이런 아내를 둔 소크라테스에게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었다. 끊임없는 아내의 잔소리를 어떻게 견뎌 내냐고.

그러자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익으면 괴로울 것이 없지.”


그녀는 남편과 둘이 있을 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대중 앞에서, 심지어는 제자들 앞에서도 남편을 서슴없이 깔아뭉갰다.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집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강론을 계속하자 그녀는 큰소리로 욕을 해대며 그에게 구정물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자 그는 태연스레 말했다. "천둥이 친 다음에 소나기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참 대단한 내공(內攻)이다.

그는 어떻게 그런 경지에까지 다다랐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는 결혼한 지 1주일 만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제 명에 못 살지! 무언가 특단의 조처를 하지 않으면 일찍 죽고 말겠구나. 이제부터 마누라가 무슨 말로 공격하더라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중무장해서 막아내리라!"


그 후 그는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아예 분노라는 감정이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한다.


그러니 우리네 남편들은 소크라테스 형님을 큰 스승으로 모시고 마누라 때문에 속에서 열불이 차오를 때마다 큰 형님을 떠올리며 그의 담대함을 배워나가자.


귀가 둘인 이유


톨스토이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 아내의 잔소리에 견디다 못해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아내 몰래 가출을 감행했다.
한겨울 러시아의 잔인한 추위와 사흘 동안의 쉼 없는 도피 여행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사람들로 북적대는 담배 연기 자욱한 불결한 삼등칸은 그에게 폐렴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더는 기차 여행을 할 수 없어진 그는 자신의 저택으로부터 400Km 이상 떨어진 이름 모를 한 조그만 시골 간이역에서 내렸다. 마침 그를 알아본 역장의 도움으로 그의 사택에서 극진한 간호를 받았지만 증세는 점점 악화되어 갔다.


한편, 집 나간 남편의 행방을 쫓아 특별열차 편까지 전세 내어 달려온 아내 소피아.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런 그녀를 끝내 만나주지 않고, 집 나간 지 일주일 만에 한을 품고 죽었다.

얼마나 마누라가 보기싫었으면 그랬을까? 세계적인 대문호의 말로치곤 너무 비참했다.


그에 반해 소크라테스는 톨스토이보다 더 독한 탕약을 마시고도 죽기는커녕 세계 최고의 철학자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 사람은 잔소리를 너무 깊이 새겨들어 객사했고,

또 한 사람은 한쪽 귀로 흘려들어 제 뜻대로 살다 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에 의해 가장 많이, 가장 심하게 상처받는가?

전부 남이, 그중에서도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무심코 혹은 고의로 던지는 말 때문이다.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에 꽂혀 평생을 가슴 부여잡고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말들,

세월 지나 생각해 보면 다 우스운 것들이고,

그런 말 치고 가슴속에 간직할 만큼 가치 있는 말 하나도 없는데,

정작 그 말 던진 사람은 기억도 잘 못 하는데,

뭐 한다고 그딴 말 가슴속에 묻어놓고 두고두고 자학해야 할까?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요, 입을 연다고 다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겨들을 말 따로 있고 흘려 들을 말 따로 있다.


쓸데없는 말, 지저분한 말, 남 욕하는 말, 기분 나쁜 말, 가슴 아픈 말 일랑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려라.


그러라고 하나님이 귀를 둘씩이나 주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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