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12 '귀담아들어라'는 말의 의미
귀가 둘인 이유 1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장애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장애인은 어떤 장애인일까요?”
“정답은 대화 장애인입니다.”
위의 문답은 필자가 <올바른 대화법>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할 때 맨 먼저 던지는 질문과 답이다.
대화를 할 줄 모르니 토론을 할 줄 모르고, 토론을 할 줄 모르니 회의는 더더욱 할 줄 모른다.
의과대학 교수 생활 35년에 얼마나 많은 회의에 참석했겠는가?
그러나 지금껏 기억에 남을만한 멋진 회의, 회의다운 회의를 해 본 기억이 없다.
소위 교수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가 이 모양이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회의(會議)를 하면 할수록 회의(懷疑)에 빠진다'라는 자조(自嘲)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난 모양이다.
그래서 필자는 대화법에 대해 강의를 할 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꼭 포함시킨다.
「한국인과 대화하는 요령」
1. “하고 싶은 말은 3분 내로 끝내라.”
한국인이 남의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들어주는 인내심의 한계는 3분을 넘지 않는다.
2. “결론부터 말하라.”
한국인은 성질이 급해서 서론, 본론, 결론 순으로 말하다가는 본론도 옳게 도달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만다. 그러니 결론부터 말하고, 상대가 궁금해서 질문을 해 대면 그때 가서 본론, 서론 순으로 말하라.
대화란?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나 대화를 할 줄 모르게 되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대화가 무엇인지 그 본질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아 ‘대화’란 단어의 사전(辭典)적 의미부터 살펴보았다.
먼저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대화(對話):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이 설명대로라면 대화란 그저 말만 주고받으면 끝난다.
과연 그럴까? 도무지 성에 안 차서 이번에는 영어사전을 찾아보았다.
*Conversation is interactive, spontaneous communication between two or more people who are following rules of etiquette.
- 대화란 에티켓의 룰을 따르는 2인 혹은 그 이상의 사람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소통을 말한다 -
이제 무언가 말이 좀 통하는 느낌이다.
대화의 본질은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이 아닌 상호 간의 소통이다.
그것도 아무렇게나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예의를 지켜가며 소통하는 것이란다.
또한,
위의 설명에는 '말'이나 '이야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좀 더 욕심을 내어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会話とは、2人もしくはそれ以上の主体が、主として言語の発声・手話・ジェスチャーなどによる意思表示によって共通の話題をやりとりするコミュニケーションや、あるいは話をする行為全般のこと.
- 대화란 2인 또는 그 이상의 주체가 주로 발성, 수화, 제스처 등의 의사표시 방법에 의해 공통의 화제를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 혹은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 전반의 일 -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소통이고, 말은 소통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앞의 두 사전에서 나오지 않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서는 일방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공통의 화제'를 올려놓고 서로 '주고받아야(やりとりする)'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정리를 해보자.
우리는 마주 보고 이야기만 나누면 대화가 된단다.
영어권 사람들은 '서로 간에, 에티켓을 지키며, 소통이 되어야' 대화가 된단다.
일본 사람들은 한발 더 나아가 '공통의 관심사를 서로 주고받아야(やりとりする)' 대화가 된단다.
이쯤 되면 우리네 문제가 무엇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답은 나왔다.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은 말만 하면 대화가 되는 줄 아는 데 있다.
말을 많이 하면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고 생각하고, 대화 중 말을 적게 하면 무언가 손해 본 것 같고 무식하단 소라라도 들을 줄 착각한다.
그래서 대화를 한다면서 서로 말 많이 하기 경쟁이라도 하는 듯 남의 말은 안 듣고 제 말만 하려 든다. 남 말하는 중간에 잘라먹고 들어오는 무례를 서슴지 않고 그것이 큰 실례라는 사실도 모른다.
나아가 방송국 시사 토론 프로에 토론자로 나온 사람들도, 심지어는 토론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 의원이라는 자들까지도 이런 일로 서로 얼굴 붉히고, 목청 높이고, 삿대질까지 해대는 추태를 너무나 자주 본다.
대화는 소통이다. 그것도 일방적 소통이 아니라 상호 간에 예의를 지키며 하는 소통이다.
상호 간의 소통은 서로 주고받으며, やりとりする하며, give & take 하며 소통한다.
어느 나라 말이나 먼저 주고 뒤에 받는다.
내가 먼저 주어야 받을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화에서 주는 것은 무엇이고 받는 것은 무엇일까? 무얼 먼저 준다는 것일까?
상대방에게 나의 말을 먼저 던지는 것이 주는 것일까?
아니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을 내가 받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화를 가장 잘하는 사람은 유식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귀담아들어라’는 말의 의미
여기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자.
하는 일이라고는 듣는 것 하나밖에 없는 귀를 두 개씩이나 준 이유가 무언지. 그리고 왜 뚜껑까지 달아주었는지.
인간의 몸에는 9개(남자)에서 10개(여자)의 구멍이 나 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7개가 이 좁은 얼굴에 모여 있다.
눈구멍 둘, 콧구멍 둘, 귓구멍 둘, 입구멍 하나. 게다가 이들 구멍 중 항상 숨을 쉬어야 하는 콧구멍을 제외하고는 다들 뚜껑이 달려있다.
뚜껑을 왜 달아놓았을까?
그 이유는 구멍이랍시고 아무 때나 쓸데없이 열어놓지 말고 안 쓸 때는 닫으라고, 필요할 때만 열라고 달아놓은 것 아니겠나.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눈 뚜껑, 입 뚜껑은 내 마음대로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데 뚜껑 중 왕 뚜껑이라 할 수 있는 귀 뚜껑은 아무리 닫으려 해도 닫을 수가 없어요. 왜 그럴까?
이 뚜껑은 닫으라고 준 물건이 아니라 모으라고 준 물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소리를 귀 뚜껑에 잘 담아서 귓구멍에 잘 넣으라고 준 물건이다.
그래서 '귀담아들으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하나면 충분할 귀를 두 개씩이나 주면서 집음기(集音機)까지 달아주실 때는 그만큼 남의 말을 잘 들으라는 하나님의 간곡한 당부가 담겨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