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16 소식(小食)

식탐

by 한우물


입의 역할과 의미

입이라는 것이 보면 볼수록 참 묘하다.

몸 밖으로 뚫려 있는 구멍 중에 제일 큰 구멍이긴 하지만 체 표면 전체로 보면 그저 조그만 구멍에 불과할 따름인데 그가 맡은 역할은 다른 어떤 장기 못지않게 크고 중요하니 말이다.


입은 <먹기>를 통해 에너지를 공급하고, <말하기>를 통해 소통하고, <키스하기>를 통해 성적 욕망을 표출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생존하고, 즐기고, 인간답게 살아가게 만든다.

그런데 입은 하나밖에 없다.


입이 하나인 관계로 생기는 불편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

애초에 입을 세 개 만들었으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을,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대체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입이 하나이듯 답도 하나다.


“입으로 하는 일은 모조리 절제(節制)하라.”



소식(小食) - 적게 먹어라 -

모든 생물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래서 먹어야만 한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으면 그 또한 우리를 죽인다. 왜 그럴까?


지구상에 인류가 나타난 시기는 불확실하니 이전 것은 다 빼버리고 호모 사피엔스만 따져보자.

그래 쳐도 최소한 20만 년이다.

인간은 그 20만 년 중 19만 년 동안은 산에 가서 열매 따 먹고 들에 가서 동물 잡아먹으며 그저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으로 항상 주린 배를 움켜쥐고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1만 년 전, 몇몇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식량을 비축할 수 있게 되었고, 18/19세기 사이에 일어난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어느 정도 배고픔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20만 년이란 기간 중 19만 9천 800년 동안은 배를 주리다시피 하며 살아오다 제대로 먹고살기 시작한 것은 겨우 200년도 채 안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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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우리 인체의 DNA는 철저히 배고프게 살아가는데 알맞게 세팅되었고,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혈당 관련 방어기전이다.


당(糖)은 세포의 주된 에너지 공급원인지라 혈당 수치에 이상이 생기면 인체는 비상사태에 돌입하여 즉시 혈당 레벨을 조절하게 되는데 이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혈당이 떨어지면 글루카곤, 에피네프린, 코르티솔, 성장 호르몬 등 네 가지나 되는 호르몬이 동원되는 데 반해, 혈당이 올라갈 땐 달랑 인슐린 하나만 분비되는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오랜 세월 배곯고 살아온 우리 인간은 공복 상태는 잘 이겨내지만, 과식으로 오는 고혈당 상태에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런 인간이 매일 배불리 먹고살면 어떤 결과가 올까?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은 비만이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 날씬하던 한국 사람들이 2021년에는 인구의 37%가 비만 환자가 되었다(체질량지수 25를 비만 기준으로 삼는 대한민국 질병관리청 통계).


비만이 오면 그다음엔 어떤 문제가 생길까?

비만은 결코 혼자 오는 법이 없어 꼭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지방간 같은 질 나쁜 친구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달고 와 온갖 분탕질을 친다.


못 먹고 못살던 1970년대에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는 인구의 1.5%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세계 10대 부국이 된 2020년에는 11%(570만 명)가 되어 지난 40년 사이에 7배 이상 증가하였다. 여기다 당뇨병 전단계 환자 1,500만을 합하면 이제 전 국민의 1/3이 당뇨병 예약 상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비만, 배, 당꺼, 햄버거.jpg


하지만 비만의 폐해는 개인의 건강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건강보험공단 발표에 따르면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한 해 동안(*2016년 기준) 무려 11조 4,679억 원에 달했으며 이 중 의료비 손실이 5조 8,858억 원으로서 가장 높았다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앞으로 의료보험 재정 파탄은 말할 것 없고 나라 살림까지 거덜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마지막으로 도덕적인 측면을 생각해 보자.

오늘날 일부 잘사는 나라 사람들은 배터지게 먹고 그 뒷감당하느라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반면, 세계적으로는 매년(每年) 3,600만 명이 굶어 죽고 매분(每分) 12명의 어린이(5세 미만)가 영양실조로 죽어 나간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실인가?


지구상의 식량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 파이 하나를 가지고 80억 인구가 나누어 먹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먹으면 그만큼 다른 사람 먹을 것을 빼앗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다 같이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기아, 어린이, 1994년 플리처 상 - Kevin Carter.jpg 1994년 플리처상 수상작 - Kevin Car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