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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10. 2023

인IV 02 더불어 사는 e세상 함께 하실래요?(하)

     

만남

나로 하여금 사회봉사란 문제에 대해 제대로 눈뜨게 해 준 것은 한 시각장애인과의 만남이었다.


2006아내는 서울에서 열리는 여고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시각장애인들을 돕는 일에 동문회가 적극 나서 달라는 한 시각장애인 동기생의 간곡한 호소를 듣고 감동받아 그 자리에서 10만 원을 후원금으로 내고 내려왔다. 다음 해 6월, 그 동기생은 사상에 있는 부산점자도서관장으로 부임해 와 아내에게 지난번 후원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는데  대화 도중 아내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교인들에게 시각장애인의 실태에 대해 얘기할 기회를 한 번 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시 우리는 평신도 다섯 가정이 모여 조그마한 개척교회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교회 설립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교회의 사회적 책임' 즉 예수사랑의 실천이었는지라 흔쾌히 오후 예배시간에 그 장을 마련해 주었다. 그날 그녀로부터 시각장애인들이 어떤 세상에 사는지에 대해 듣고, 그 후 점자도서관에 있는 '시각장애인 체험실'을 견학해 본 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두 살 때 걸린 심한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평생을 2급 장애인으로 살아온 나는 내게 씌워진 장애인이란 십자가를 감당하는 데만 급급하여 나와 다른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아픔에까지 눈길을 돌릴 여유는 없었다.그러다가 난생처음, 간접적으로나마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그 엄청난 고통을 접하고 나니 내가 짊어진 멍에는 그들의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즉시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기후원을 시작하고, 내 주변의 의사들을 달달 볶아 목돈이 들어가는 여러 가지 장비와 시설 교체에 실질적 도움을 주게 했다.     


봉사

그러던 어느 날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봉사란 어떤 것일까그것은 아마도 내가 주기 힘든 것그리고 남 주기 아까운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내놓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쉬운 것을 하고 있었다목돈도 아니고, 얼마 되지 않는 소액이 매달 내 통장에서 빠져나간다고 해서 내 생활에 큰 지장을 주진 않는다. 그저 ‘이 돈은 내 몫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럼 내가 주기 힘든 건 무얼까? 그것은 '시간'과 '노력 봉사'였다. 

    

나에게 일주일이란 시간은 너무 빠듯했다 

50대 중반, 한창 일할 나이에 사회활동도 왕성할 때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정신없이 바빴고, 개척교회를 하던 때라 일요일은 종일 교회에서 보내야 했기에 토요일이야말로 나에겐 황금 같은 휴식 시간이었다. 


게다가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쉽지 않은 지체장애인이다 보니 이 몸으로 남을 위해 몸으로 봉사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겐 돈 내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이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하기 쉬운 것만 할 게 아니라 내가 하기 힘든 것을 한번 시도해 보자.' 

'나에게 유일한 휴식시간인 토요일 날 두어 시간 빼서 내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그래서 찾아낸 것이 녹음실에서 책을 낭독하는 일이었고 그 일은 내게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었다. 


"흐흐,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목소리 하나는 죽이지 않나?  게다가 국민학교 웅변반 시절 갈고닦은 표준어 실력으로 발음 또한 정확하겠다. 마~ 딱 됐네."     


점자도서관

점자도서관의 주 업무는 점자도서 제작과 대여다. 

하지만 점자도서 제작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과 노력과 경비가 들어간다.     


요즈음은 빨리 찍어대는 고속 프린터기도 있다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구멍을 뚫어 만들었기에 점자책 한 권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또한 손가락으로 만져서 글자로 쉬 인식하게 만들려면 우선 글자 크기가 커야 하고 볼륨감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두꺼운 재질의 종이 두 장으로 책 한 장의 앞면과 뒷면을 만들고, 그 사이에 공간을 두고 붙여야 한다.

Myriams-Fotos- Pixabay


그러다 보니 종이 책 한 권은 점자책 대여섯 권의 분량이 되고 부피는 이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암흑의 세계에 살면서 책을 읽게 되어 즐거워하는 이 해맑은 웃음을 보라. (사진출처 - donga.com)


이렇게 제작된 점자책은 분량이 큰 만큼 저장 공간도 늘어나게 되고, 책장 사이에 접착제와 공간이 있다 보니 좀도 잘 슬어 서고의 환풍 및 온도와 습도 조절 장치가 여느 도서관보다 더 잘 되어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 책 한 권의 가치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어렵게 제작된 점자도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전체 시각장애인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점이었고  

    난수표 같은 이 점자판을 다 외워야 해독이 가능하니 나 같은 사람은 아예 엄두도 못 내겠다.                       (사진출처 - 경기도 점자도서관)


이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녹음 도서다.     

요즈음에야 유튜브에 들어가면 책 읽어주는 북튜버들이 넘쳐날 정도지만 그런 게 없던 그 시절에는 오로지 나 같은 자원 봉사자들이 녹음실에서 책을 낭독하여 컴퓨터에 저장해 놓으면 그걸 카세트테이프에다 하나하나 옮겨 녹음도서로 제작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내와 나는 매주 토요일 11시쯤 도서관에 가서 나는 녹음실에서 책을 낭독하고 아내는 녹음된 카세트테이프에 라벨을 붙이고분류하고정리해 넣었다그리고 대여가 많이 안 된 오래된 테이프는 서로 들러붙기 쉬우므로 이들을 테이프 레코더에 집어넣고 고속으로 돌리는 작업을 했다.     


당시 직원 수가 열두어 명이던 점자도서관에 자원봉사자 수는 다수의 어린 중·고등학생들을 포함하여 2,000여 명에 달했다 하니 점자책 한 권녹음 도서 한 개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녹아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하여 이 관장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따라다니며 서포터 역할을 해 온 게 어언 15  

   

손에 손잡고

"내가 이런 활동에 대해 밝히는 것은 내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요많은 사람들이 사회봉사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고자 함입니다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는 나보다 훨씬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며칠 전 아내가 산책 나갔다가 폐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는 노인을 보고서는 '할아버지, 이걸로 맛있는 것 사 드세요.' 하며 만 원 쩌리 한 장을 건네었는데, 돈을 보는 순간 노인은 뭣에 홀리기라도 한 듯 훽 낚아채고선 고맙단 말 한마디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랍니다. 얼마나 갈급하고 절실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내 입에 들어오는 쌀 한 톨에도 수많은 사람의 노고와 하늘과 땅의 도움이 녹아있지요. 만약 이들이 없다면 제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어디 입에 풀칠이나 제대로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는 빚진 자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수입 중 일부는 내 몫이 아니라 생각하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때 놓으면 어떨까요? 다믄 한 달에 만 원이라도 이웃을 위해 소액 기부를 해보면 어떨까요?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 먼저 손 내밀어 힘없는 손 잡아주고, 무거운 짐 서로 나누어지고 가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습니까? 우리 함께 하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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