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우물 Dec 02. 2023

인IV06 보이는 마음, 보이지 않는 몸

토요일이라 오전 내내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으니 아내가 어디 공기 좋은 데 가서 좀 걷고 싶단다.

안 그래도 온종일 집에 있으면서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대령시키는 ‘종간나새끼’ 노릇 하기도 미안하던 터라 양산에 있는 통도사에 가기로 하고 차에 올랐다.


만덕에서 출발해 화명동 '별미국수'에서 칼국수와 팥칼국수로 맛점하고 통도사에 도착하니 전날 내린 비로 계곡물이 풍성하니 흘러내려간다.


오랜만에 멋들어진 소나무로 둘러싸인 자동차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며 자연을 감상하니 금방 기분이 상큼해지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 한편에 전시된 작품을 찍은 사진)


주차장에 차를 댄 후 절 구경할 요량으로 자그만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위에는 할머니들이 졸졸이 늘어 앉아 산 야채, 나물 등을 벌려 놓고 팔고 있고


사찰 담벼락에는 흰 천막들이 죽 널어 서서 장마당을 이루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절에 왔다가 시골 장터 구경하게 생겼으니!

안 그래도 여기 오면서 너무 많이 걷게 되지나 않을까 약간은 부담스러웠는데 이제 힘 안 들이고 슬슬 돌아다니며 즐길 거리가 생겼으니 아내보다 내가 살판났다.


장터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각종 무공해 자연 농산물과 직접 담근 먹거리, 즉석 음식, 전통 직물 옷, 목공예품, 수공예품 등이 즐비했고


스님들도 간만의 구경거리에 무리로 늘어서서 소박한 물욕을 드러낸다.


먹거리 중에는 생전 처음 듣는 희한한 이름의 버섯들도 있었다.

‘꽃송이 버섯’과 ’노루궁디 버섯’.


꽃송이 버섯은 척 보니 꽃송이처럼 생겨 그 이름의 연유를 알겠는데


노루궁디 버섯은 노루 엉덩이를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상품 밑에 제발 만지지 말라는 호소문이 붙은 걸 보니 그 희한한 모양과 관능적인 이름에 응큼한 호기심이 동한 중생이 많은 모양이다)


역시 밀가루 음식은 근기가 없는지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배가 출출하여, 매대 앞을 지나가면서 각종 ‘맛보기’ 음식 조각을 입에 넣고, 공갈빵처럼 생긴 담백한 호떡을 하나 사 먹은 후, 쌉쌀한 도토리 맛이 혀를 홀리는 묵 한 덩이를 샀다.


묵 종류도 어찌나 다양한지! 색깔은 또 얼마나 이쁜지!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묵 집을 지나자 제일 먼저 맞는 곳이 직물공예품점이다.

작가가 하얀 천에다 꽃을 직접 그려 넣어 만들었다는, 백화점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개성 있는 작품들이 촌색시같이 수줍은 모습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길래 아내에게 줄 수건 두 장과 무릎덮개 한 장을 샀다.


그 옆을 보니 나무 조각에 양각(陽刻)으로 들꽃을 새기고 아름다운 색칠을 한 찻잔 받침이 또 나를 유혹한다.

(나중에 집에 와서 장식장 안에 진열했더니 나의 애장품들과 멋들어지게 어울린다)


목공예 다음에는 소담스런 장신구가 앳된 미소를 짓고 있어 팔찌 하나를 사 아내 손목에 채워줬다.


이젠 그만 사야겠다 하고 발걸음을 옮기다 천연석으로 만든 공방 앞을 스치는 순간, 우아한 자태의 액세서리에 눈이 홀려 또다시 매대 앞에 섰다.  


아내더러 하나 골라 보라 그랬더니 그동안 브로치는 많이 사다 줘서 그런지 이번엔 쑥비취로 만든 개성 있는 목걸이에 관심을 보인다.

값을 물어보니 12만 원이라는데, 혹 비싸서 안 살까 봐 걱정이 되었던지 10만 원에 주겠단다.


해운대에 있는 백화점에서라면 30만 원 정도는 충분히 붙일만한 물건 같은데 10만 원이라니, 이야말로 거저다 싶어 바로 현금으로 지불했다.


가게 주인의 설명으로는 공방은 충청도에 있고 납품은 여러 곳에 하는데, 서울 신세계에 납품하는 가격이 30만 원 정도라 한다. 

하지만 이 장터에선 이 정도의 가격도 제일 비싼 축에 드는지라 물건이 잘 안 팔려 오늘 첫 마수 했다면서 3만 원짜리 목걸이를 하나 끼워주었다.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보니 발이 좀 피곤하기도 하고 조금 쉬어 가고 싶기도 해서 차 파는 천막에 들러 차 한잔 맛보고 가려고 앉았는데, 사람 좋아 보이는 스님 행색의 점주가 이 차 저 차 자꾸만 따라준다.



이왕 따라 놓은 차, 조금씩 맛본 후 그냥 일어서긴 무엇해서 차 한 봉지 사 주려하니 아내가 작은 소리로 "집에 마실 차 많이 있어요." 하며 소매를 끈다.


하지만 내가 어디 그냥 갈 사람인가?

마트에 돌아다니면서도 맛보기 음식 하나 집어 먹고는 그냥 가기 미안해서 꼭 무언가 사 주려는 통에 아내는 내 소매 잡아끌기 바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고, 저 아주머니 물건 하나 팔 거라고 온종일 서서 프라이팬에 굽고 지지고 외치고 해 샀는데 그래도 말값은 해 주고 가야지~" 하며 기어이 사고 마는 사람이라, 이날도 어김없이 "아이고, 저 사람들 지리산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라도 팔아줘야제." 하면서 만 오천 원짜리 ‘구찌뽕뿌리 차’ 한 통 사서 들고 나왔다.


이제 볼일 다 봤다 싶어 돌아 나가는데 아내가 옆에 없어 뒤돌아보니 마지막 천막에서 무언가 맛보고 있다.

호기심에 나도 들어가 보았더니 스님들이 만든 갓김치였는데 맛있다고 한 봉지 사자 신다.

호주머니 탈탈 털어 값을 치르고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좌판대 앞에 걸쳐 놓은 천에 쓰인 글귀 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몸은 보이는 마음 마음은 보이지 않는 몸’  



순간, 나는 감탄했다. 어쩌면 저런 깨달음을!


그렇다.

몸과 마음은 엄연히 따로 존재하나 하나가 돌아가면 다른 하나가 따라 도는 톱니바퀴 같은 것이다.

하여, 몸이 편하려면 마음이 편해야 하고 마음이 편하려면 몸이 편해야 한다.

이런 의학적 원리를 어쩌면 저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이날 통도사에서 본 저 글귀 하나를 두고두고 씹어 먹다가 훗날 나의 저서 <아무튼, 사는 동안 안 아프게>의 서브타이틀에도 올려놓게 되었으니, 그날 거기 가서 이것저것 건진 것 중에 이 글귀야말로 가장 값진 것이었다.




♣ 위의 글은「인요레」1편에 실었던 글로서 사진이 너무 많다 보니 문맥이 매끄럽지 않아 매거진을 브런치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제외시켰던 글이다. 하지만 다시 보니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이라 문장 이음새 부분들을 손질하여 다시 올리오니 부디 해량(海諒) 해 주옵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인IV05 불안이란 돌덩이 인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