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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Nov 28. 2023

인IV05 불안이란 돌덩이 인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의사 된 자의 보람

불안이란 돌덩이

63세 여자 환자가 원인 불명의 복통으로 복부초음파 검사가 의뢰되었다.

검사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자침대에 누워있던 환자가 고개를 들고 "원장님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몇 번씩 재진 받으러 오는 환자도 인사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초진인 환자가 이렇게 먼저 인사를 건네오다니! 귀한 손님을 맞은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답례 인사를 한 후 탐촉자를 들고 환자의 배를 바라보니 배에 구멍을 뚫은 흔적이 네 개나 있다이게 무슨 자국이냐고 물어보니 6개월 전에 양쪽 난소에 생긴 다발성 물혹으로 복강경 제거술 받은 후 생긴 흉터라 하였다혹시 싶어, 또 다른 수술을 받은 적 있나 물어보니 6년 전에는 담석증으로 담낭제거술을 받았고그 후 갑상샘암으로 갑상선 절제술도 받았단다.     


"그러면 이번에는 어디가 아파서 왔습니까?"

"3일 전부터 배꼽 주위가 아파서 왔습니다."


초음파로 간과 담도계를 쑥 훑어보니 담도는 늘어나 있는데 특별히 막힌 곳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담낭절제술 후에 흔히 오는 경한 담도 확장으로 생각되었다양쪽 콩팥, 췌장, 비장, 모두 정상이고 배꼽 주변의 장도 이상소견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평소 아프다는 부위를 손으로 만져보았는데 장도 경직된 곳 없이 소프트하고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을 때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검사를 끝내고  환자가 일어나 배를 닦고 마주 앉자 내가 물었다.

"그동안 수술받은 병원이 세 곳이나 되고 다들 큰 병원이던데번에는 왜 우리같이 작은 병원으로 오게 되었는지요?" 

    

 그러자 환자가 답했다.

"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니 아들과 며느리가 원장님을 찾아가서 검사받으라 해서 왔습니다."

 

"아니아들 며느리가 나를 어찌 알고?"

"둘 다 여기서 건진 초음파를 받은 후 원장님께서 쓰신 책도 읽었답니다."

 

"~, 그래요?"

"오늘, CT도 찍기로 되어있는데 검사 마치고 나면 꼭 원장님을 뵙고 오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환자는 걱정이 되어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한다.

 

인제 답은 나왔다

이 환자는 'Psychosomatic disorder, 정신신체이상'에 해당한다.

이것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이상으로서 이에 제일 민감한 부위가 바로 위와 장이다. 이 환자의 경우지금껏 세 번씩이나 수술을 받았고 그중 한 번은 암 수술이다. 그동안 검사받으러 갈 때마다 얼마나 불안했겠는가그런데도 속이 편안하다면 그야말로 잘못된 거지.

 

"이번에 느끼는 통증은 장이나 다른 장기에 기질적 이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장의 활동이 안 좋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처방을 일러주었다.

"배가 안 좋다 싶으면 전기 핫팩을 배 위에 덮어 배를 따뜻하게 한 후핫팩 밑으로 양손을 집어넣어 배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르세요. 그러다 응어리 같은 것이 만져지면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서 살살 옆으로 밀어 보세요. 그러면서 '네가 나 때문에 참 고생이 많구나.' 하며 우는 아이 달래듯 살살 달래 보세요."     


위로라는 처방

환자는 내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지금껏 살아온다고 참 힘들었지요? 암 수술을 포함해서 수술을 세 번씩이나 받았으니, 검사받을 때마다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이제부턴 그런 자신을 위로하고 쓰다듬어 주세요."  


환자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며 양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양손으로는 연신 눈물을 훔친다.      


하지만 이젠아무 걱정 마세요나쁜 것들따낼 만큼 때 냈잖아요아무렴 지도 양심이 있지 그래, 인제 더 이상 떼낼 게 뭐 있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검사상 아무 이상 없으니 마음 놓으시고요."     


환자의 얼굴이 펴지며 눈물이 그친다.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잖아요딸 아들 낳고 키워 공부시키고 시집·장가보내기까지 내 인생 없이 살았잖아요? 이젠 자신을 위해 살 때지요. 그럴 자격 충분하고요! 그리고이 나이 같으면 단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히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뭐 한다고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온갖 상상 다 하면서 그렇게 불안해하며 살겠습니까내가 보장할 테니 앞으로는 걱정하지 마시라요."     


환자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면서 이젠 자불자불 말도 잘한다.     


"인제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까?"     


그러자 환자가 웃으며 말한다.     

원장님오늘 CT도 찍기로 했는데 다 찍고 나면 이들한테 전화해야 합니다아이들이 많이 기다릴 거예요.”     


그러면 아들한테 전하세요내가 아무 이상 없다 하더라고.”     


그날 오후, 오전에 찍은 CT 사진을 확인하니 예상대로 아무 이상 없었다.     


위로의 효능

그로부터 6개월 후쯤 된 어느 날,

문득 그 환자의 안부가 궁금해서 원무과에 부탁해 폰번호를 알아낸 후 전화를 걸었다

모르는 전화라 안 받는지 부재중이라 안 받는진 모르겠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환자 한 사람 보고 오니 그 환자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 있었다. 

다시 전화했다. 그랬더니 "누구~ 신가요?" 한다.     


내 신분을 밝혔더니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로, 너무나 밝은 목소리로 환대한다. 

6개월 전과는 영 딴사람 같은 분위기였다. 

몸 상태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날 이후로 배가 한 번도 안 아팠단다. 

내 말에 많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 요즈음은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고 있다 하였다.     


똑같은 상황에서, 바라보는 시각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삶이 저렇게도 달라지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런 것이 바로 의사 된 자의 보람 아니겠는가? 

그 환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하시길~~          




*대문사진 : Kjeragbolten(세라그볼텐) at 스타방에르(Stavanger), 노르웨이; 출처 - 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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