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조선전기 문신인 서거정이 역사에 누락된 사실과 조야의 한담을 소재로 서술한 수필집 필원잡기 (筆苑雜記)에는 세조에 관한 다음과 같은 재미난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다 한다.
어느 날 세조는 당시 영의정이던 신숙주(申叔舟)와 우의정에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구치관(具致寬)을 함께 불러들여 다음과 같이 일렀다.
"내가 오늘 경들에게 물을 것이 있는데 능히 대답하면 그만이지만 그러지 못할 시에는 벌주를 내리겠소."
이에 두 정승은 "예이~" 하며 머리를 조아리며 물음을 기다렸다.
세조가 먼저 "신정승!" 하고 불렀다.
이에 신숙주가 "예"라고 답하자 세조는 "내가 새 정승인 신정승(新政丞)을 불렀는데 왜 신 정승(申政丞)이 대답하오?"라며 벌주를 내렸다.
세조가 다시 "구정승!" 하니, 이번에는 구치관이 "예"라 대답하였다.
그러자 세조는 "내가 묵은 정승인 구정승(舊政丞)을 불렀는데 왜 구 정승(具政丞)이 대답하오?" 하며 또 벌주를 내렸다.
세조가 이번에는 "신정승, 구정승" 하며 한꺼번에 부르자 이번에는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에 세조는 "임금이 불렀는데도 대답을 하지 않다니, 무엄하도다."라며 또 벌주를 내렸다.
그날 밤 세조는 이렇게 신구(新舊, 申具) 두 정승을 내키는 대로 불러가며 마구 벌주를 내렸고
이에 두 정승은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되어 "신들은 폐하의 깊은 뜻을 차마 헤아리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하고는 둘 다 쓰러지고 말았다.
군주의 깊은 뜻
조선 왕 중에 세조만큼 애주가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신하들과 술자리도 잦았고 이 술 때문에 많은 신하들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신숙주의 경우 술자리에서 왕과 팔씨름을 하여 왕을 꺾음으로써 왕의 의심을 받아 암살당할 뻔한 것을 한명회의 기지로 살아나기도 했다.
위의 에피소드는 조정의 핵심 대신인 영의정과 좌의정 사이가 서먹한 것을 안타까이 여긴 세조가 그 둘이 하루빨리 친해지게 하기 위해 일부러 마련한 자리라고 한다.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수양대군 세조.
피의 군주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냉혹한 15세기의 절대군주 세조.
그런 그에게도 신하에 대한 이런 애틋한 마음 씀이 있었다는 사실이, 7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 후손들에게 가슴 따뜻한 훈풍이 되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