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보통사람들
한 여인의 죽음
2003년 5월, 일본의 3대 일간지들은 한 여성의 죽음을 대서특필 하였고 그 장례식에는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정치인, 언론인, 예술인등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쯤 되면 무슨 대단한 저명인사가 사망했을 것으로 생각되나 그녀의 직업은 동경의 긴자에 있는 조그만 바의 주인이자 바텐더이자 호스티스였다. 사망 당시 나이는 101세로서 현역 호스티스(바텐더) 중 가장 고령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하잘 것 없는 조그만 술집주인의 죽음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게 만들었을까?
여인의 정체
그녀의 이름은 아리마 히데꼬(有馬秀子).
1902년 아사쿠사의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도쿄 여학관을 나와 20세에 엔지니어와 결혼하여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였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녀는 “세상은 다 바뀌었다. 이제 여성도 더 이상 집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면서 1948년 도쿄 외곽에다 조그만 커피점을 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52년, 그녀는 도쿄의 중심부 긴자로 옮겨와 ‘길비 A' 라는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하여 101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같은 장소에서 50년 동안 현역 호스티스로 일하다 갔다.
이런 그녀의 가계에는 유명작가, 정치가 등 많은 일본의 거물급 인사들이 단골로 찾아왔고 그러다 보니 기삿거리에 배가 고픈 기자들 또한 아지트처럼 들락거렸다 한다.
그녀의 일상과 철학
그녀는 매일 자정이면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그때부터 가게장부 정리에 들어가 오전 2시에 취침한다.
아침 6시면 기상하여 전 날 가게에 온 손님들의 이름, 인상착의, 관심사 등을 노트에 꼼꼼히 메모한다.
아침 식사 후, 승진하는 손님들에게는 축하편지를, 좌천되는 손님들에게는 격려의 편지를 쓴다.
그러고 나서 일본의 3개 일간지를 부고(訃告)까지 숙독한다.
(당시 일본의 중앙지는 3개밖에 없고 각 일간지의 분량은 우리나라의 주간지보다 더 두꺼운 수준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단지 사람들과 말하기를 좋아해서 이렇게 오래 이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이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나는 지금도 손님과의 대화가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 3개 신문을 광고까지 모두 읽고 있다. “
매주 한차례 미장원에서 머리손질, 손톱정리, 마사지를 받는다.
그녀는 스스로를 호스티스라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호스티스는 끝없이 노력하고 스스로를 가꿔야 한다.”
40년간 술은 마시지 않았고, 90세 넘어서 양주를 조금씩 마셨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호스티스는 술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이 즐겁게 마시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나는 당시 한 신문에 난 그녀에 관한 기사를 읽었을 때, 어찌하여 일본이 많은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우리로서는 넘보기 힘들 정도의 노벨상 수상자까지 배출해 낼 수 있었는지 그 저력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감명 깊었다.
'저 철저한 프로정신, 그리고 스타를 만들어 낼 줄 아는 대중과 매체..'
그와 동시에 일어나는 한 생각이 나를 다시 한번 채찍질하며 다가왔다.
‘자신을 호스티스라 칭하며 매일 밤 술 손님을 상대하는 바 주인이 이럴 진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이자 제자를 길러내는 선생을 천직으로 삼아온 나는 내 하는 일에 얼마나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던가?’
* 참고자료 :
중앙일보 2003년 5월 31일 및 9월 27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