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문제만큼은 복잡하고 바쁜 대학병원보다는 동네치과가 더 나을 것 같아
퇴직 후 처음으로 아내가 다니는 동네 치과에 따라갔다.
공용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와 치과가 입주해 있는 건물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 한쪽 벽면에는 여러 가게 이름들과 함께 의원, 한의원, 치과, 치료실 등의 조그만 팻말이
죽 걸렸는데 그중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 이름이 내 눈을 끈 이유는 치과 이름 위에 '우리 동네 서울대병원'이란 수식어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얼마나 실력이 없었으면, 얼마나 내세울 게 없었으면 출신학교를 간판으로 내세운단 말인가?
그런 건 자기 병원 안에 얼마든지 써 붙여놓을 수 있고, 그것 가지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그걸 꼭 옥외 간판에 써 놓아야 하겠는가?
이 치과뿐 아니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연세 00 의원'이란 간판은 흔하게 보이고, 병의원 간판에 연세대나 서울대 로고를 그려놓은 것 또한 심심찮게 보이고, 심지어는 '서울대 출신 원장이 진료하는 00 의원'이라는 간판도 본 적 있다.
서울대학은 명실공히 이 나라 최고의 대학이다.
그중에서도 서울의대 출신이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수재요 엘리트 중에 엘리트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대학을 나온 사람은 자신의 모교에 대해 최고의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그런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자신의 출신 대학 이름을 길거리 간판에 새겨놓고 영업 도구로 전락시켜 대학의 격까지 떨어지게 만드는가?
회사를 운영하는 CEO가 회사 이름 앞에 '서울대 출신 사장이 운영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써붙여놓은 것 본 적 있나?
한의원 간판에 '경희대 출신 원장' 운운하고, 약국 간판에 '서울대 출신 약사' 운운해 놓은 것 본 적 있더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개업의라 하더라도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품격은 좀 지키며 살자.
의사는 간판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실력으로 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