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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3 의자 이야기(2) 너와 나의 의자

by 한우물
‘살면서 他人에게 의자가 되어준 이 얼마나 되랴?’


이 말은 곧바로

“너는 지금껏 네 삶의 일부를 타인의 의자로 내어준 적이 얼마나 되느뇨?”

라는 질문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혼자서 손꼽아 세어본다.

“제법 되는데요.”


하지만,

“타인이 너에게 제공한 의자와 비교해서 어느 것이 더 많으뇨?”

라는 질문이 들려오는 순간, ‘삐약’ 소리도 못 내고 고개가 푹 떨어지고 만다.


그랬다.

내가 제공한 의자의 수를 세는 데는 열 손가락이면 충분했지만

타인으로부터 받은 의자의 수는 손가락 발가락 중심가락까지 동원해도 모자랄만큼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그 사실을 잊고 살았다.


몇 년 전, 졸업 후 몇십 년 만에 국민학교 동기회 모임에 나갔을 때,

얼굴도 어렴풋한 친구가 반갑다고 소리치며 다가와 수다를 떨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때 내, 니 가방 많이 들어줬다 아이가!"


그러나 내게는 그런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며칠 전, 중고등학교 때 친했던 한 동기 친구가 몇십 년 만에 전화해 와 만나러 갔더니

빛바랜 흑백사진 몇 장을 들고 나와 추억을 더듬다가

자전거를 앞에 두고 황량한 해변을 배경으로 같이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 내 자전거 뒤에 니 태우고 많이 다녔다 아이가!

서면도 가고, 남포동도 가고, 해운대까지 안 갔나. 여기가 바로 해운대 바닷가고!"


그런데 정작 나는 해운대는 고사하고 그의 자전거를 탄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국민학교 때 일은 너무 어렸을 때라 잊을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자주 자전거를 태워준 사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왜 그럴까?


그건 아마도

어려서부터 장애인으로 살아오다 보니 남이 나를 도와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그리 된 것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남이 제공해준 의자에 셀 수 없이 많이 앉아왔으면서 그 고마움마저 점점 잊어간 게 된다.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래서 다짐해본다.

지금까진 타인이 제공한 의자에 앉아왔지만 내 인생 제2막은 내가 타인에게 의자가 되어주고 싶다고.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하며 말을 잇지 못하게 하는 그런 수준까지는 못 되더라도

피골 계곡 초입에 누군가가 놓아둔 저 의자처럼 지친 영육(靈肉) 잠시라도 앉아 쉬어가게 해 주는

그런 의자라도 되자.


'그러면 누구에게 제일 먼저 가장 튼실한 의자를 제공해야 할까?'


상념은 또다시 날개 짓 한다.


'지금껏 나는 누가 내민 의자에 가장 많이 앉아왔을까?'


내 인생 제1막 전반전, 태어나서부터 결혼하기까진 아버지가 내민 의자였고

내 인생 제1막 후반전, 결혼하고부터 지금까진 아내가 내민 의자였다.


그 아버지가 있었기에 어린 시절 어느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열등감 없이 반듯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성인이 되어 혼자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강인한 정신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이 아내가 있었기에 세상으로 나아가 마음껏 내 꿈과 뜻을 펼칠 수 있었고

아이들은 반듯하고 올곧게 자라 부모의 자부심이 되었다.


그 아버지와는 27년을 살았었고, 이 아내와는 40년을 살아왔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아내는 지금 살아 내 곁에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나는 누구에게 제일 먼저 가장 튼실한 의자를 제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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