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얼굴(1)
내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두 개 이상의 우연이 순차적으로 포개듯 일어나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지점으로 나를 몰아가는 것.
이런 관념적 개념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 마디 논리적 설명보다 하나의 실례(實例)를 드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 지금부터 필자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영상의학 전문의가 된 사연
이에 대한 사연은 나의 자전소설 「보조기 II 07화」 https://brunch.co.kr/@3b920526b85b43d/42
에 잘 나와 있으니 먼저 이 이야기를 읽어본 후,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자.
1) 만약 그날 전화번호 수첩에서 문 선생의 이름을 보지 못했더라면?
2) 내가 의국에 전화했을 때, 문 선생이 화장실에라도 가고 없었더라면?
3) 만약 그때, 난킴스 지원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4) 그날 의국을 지키던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내게 부탁하고 일찍 퇴근하지 않았더라면?
5) 만약 그 선배가 나보다 5분이라도 일찍 왔더라면?
이 다섯 가지 조건은 각각 수평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블록 쌓기처럼 하나하나 쌓아 올라간 것이라 이 중 하나만 빼도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이 요소 하나하나에는 나의 의지가 개입될 부분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시계의 톱니바퀴 같은 것이라 이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의지뿐이다.
결국, 그 운명의 날에 건 전화 한 통이 나로 하여금 생각지도 않은 영상의학과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