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과 열린 문

by 한우물

인생이란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여정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하고, 그 길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밀어보지만, 때로는 그 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굳게 닫혀 있기만 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문이 살짝 열리며 우리를 초대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문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운명으로 향하는 입구인 경우가 많다.


하늘이 예비해 둔 길

어릴 때 심한 소아마비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내가 이만큼 사람 구실 하게 된 것은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 덕분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지체장애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의사가 되려 하였고, 내 신체 조건상 장시간 서서 수술해야 하는 정형외과는 할 수 없어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지도교수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고 말았다.


그 교수는 나더러 ‘환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의사보다는 건강한 의사를 더 원하는 법’이라면서 자네는 임상 의사가 되기보다는 기초의학을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하였다.

이제 곧 의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던 나에게 그 교수님의 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 같은 사람은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순간적으로 격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방향을 기초의학으로 돌렸다.


마침 그 해, 기초의학 중 한 과에서 신임 교수 요원을 뽑는다길래 그 과 주임교수를 찾아갔더니 자기 과는 출장을 자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안된다 하였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는 아예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다. 그리하여 다시 의사가 되기로 하였지만, 인턴으로 받아주는 곳도 잘 없어 우여곡절 끝에 겨우 시립병원 인턴으로 들어갔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무슨 과를 할까 고심하다가 임상과 중 가장 몸을 적게 움직여도 될 것 같은 DM과를 하기로 하고 모교의 DM과 주임교수 집으로 찾아갔더니 약속도 없이 집으로 찾아왔다고 욕만 직사게 듣고 거지 취급당하고 쫓겨 나왔다.


다음으로는 학생 때 동아리 지도교수를 한 적이 있는 다른 대학병원 DM괴 주임교수와 미리 약속을 잡고 집으로 찾아갔더니 이번엔 교수가 도망가고 없었다.


마지막으로, 친구 자형의 소개로 M 종합병원 DM과 과장 집에 찾아갔더니 미리 인사한 지원자가 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리하여 모든 것 포기하고 아무 희망 없이 인턴 숙소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이리저리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다가 그중 한 통의 전화가 내 운명의 고리에 걸린 것이다.


닫힌 문, 열린 문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차가운 문들.

그 절망의 끝자락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영상의학과'라는 과가 문을 빼꼼히 열고서는 다른 사람들은 얼씬도 못 하게 막아놓고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세계를 향해 훨훨 날아올랐다.


이렇듯 운명은 때때로 우리가 계획한 모든 문을 닫아걸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그 열린 문 너머에는 내게 가장 맞는 길,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운명이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 표제사진 출처: Gens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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