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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Nov 15. 2024

07 운명의 얼굴(2) 닫힌 문, 열린 문

운명의 얼굴(2)

   내가 열고자 하는 문은 전부 닫혀 꿈쩍도 하지 않는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빼꼼히 열린 채 손짓하는 문




어릴 때 심한 소아마비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내가 이만큼 사람 구실 하게 된 것은 정형외과와 재활의학 덕분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지체장애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의사가 되려 하였고, 내 신체 조건 상 장시간 서서 수술해야 하는 정형외과는 할 수 없어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었다. 하지만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지도교수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고 말았다.


그 교수는 나더러 ‘환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의사보다는 건강한 의사를 더 원하는 법’이라면서 자네는 임상 의사가 되기보다는 기초의학을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하였다.

이제 곧 의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던 나에게 그 교수님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 같은 사람은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순간적으로 격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방향을 기초의학으로 돌렸다.


마침 그 해, 기초의학 중 한 과에서 신임 교수 요원을 뽑는다길래 그 과 주임교수를 찾아갔더니 자기 과는 출장을 자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안된다 하였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는 아예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다. 


그리하여 다시 의사가 되기로 하였지만, 인턴으로 받아주는 곳도 잘 없어 우여곡절 끝에 겨우 시립병원 인턴으로 들어갔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무슨 과를 할까 고심하다가 임상과 중 가장 몸을 적게 움직여도 될 것 같은 DM과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험이라도  한번 치게해 달라고 인간적으로 호소하기 위해 모교의 DM과 주임교수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날 그 교수는 나에게 그런 문제로 연구실이 아닌 집으로 찾아왔다고 얼마나 몰아부치던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단 말만 연발하며 몸을 떨다 거지 처럼 쫓겨 나왔다.


그런 치욕을 당한 후, 이번에는 학생 때 동아리 지도교수를 한 적이 있는 분으로서 당시 다른 대학병원 DM과 주임교수를 하고있던 모 교수와 미리 약속을 잡고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날 교수도망가고 집에 없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친구 자형의 소개로 M 종합병원 DM과 과장 집에 찾아갔다. 그러자 그분은 미리 찾아와 인사한 지원자가 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리하여 모든 것 포기하고 아무 희망 없이 인턴 숙소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이리저리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다가 그중 한 통의 전화가 내 운명의 고리에 걸리고 말았다(앞 이야기 참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차가운 문들.

그 절망의 끝자락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영상의학과'라는 과가 문을 빼꼼히 열고서는 나에게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신체적 조건과 나의 적성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


운명은 내게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고 덕분에 나는 세상을 향해 마음껏 날갯짓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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