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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Dec 08. 2024
09 운명의 굴레
앞서 우리는 우연의 가면을 쓰고 우리 앞에 등장하는 운명의 얼굴을 살짝 들쳐보았다.
이제 관심은 그의 몸통으로 향한다.
운명은 우리에게 어떤 굴레를 씌우고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얼마나 지배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일까? 아니면 반만일까? 아니면 극히 제한된 일부분만일까?
누구나 한 번쯤은 품어보았을 이 의문.
하지만
운명을 관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이
에 대한 정답을
우리 인간은 가지고 있지 않다.
신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작고 허접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나를 향한 신의 뜻만큼은 바로 알기 위해 평생토록 무릎 꿇고 그 뜻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내게 주어진 운명 역시 신의 뜻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그 운명의 실체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생에 대한 태도와 삶의 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의 지성이 파악하고 있는 진실의 단편적 조각들을 맞추어 가며 운명의 윤곽을 잡아가 보자.
그리하다 보면 비록 정답은 아닐지라도
진실에 가까운 근사(近似)한 답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운명은 내가 물려받은
집터와 그 위에 지을 집의
설계도다
사람은 태어날 때, 앞으로 성인이 되어 살아갈 터와
그 위에 지을 집의 설계도를
받아 나온다.
어떤 사람은 드넓은 대지 위에 대 저택을 지을 설계도를 받아 나오고 어떤 사람은
시골 산간마을의 손바닥만 한 땅뙈기 위에 조그마한 초가집을 지을 설계도가 쥐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윤곽과 골격만 그려놓은 미완성의 설계도다.
2) 운명은 주연과 조연을 정해 준다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우리는 거기에 출연하는 배우다.
연출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각 캐릭터에 걸맞은 배우를 기용한다.
드라마에는 주연과 조연, 그리고 많은 엑스트라가 등장하는데
어떤 배우에게 어떤 배역을 맡길지는 오로지 연출자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배우는 평생 조연만 하다가 끝나고, 어떤 배우는 주연만 하다가 간다.
그것이 운명이다.
3) 운명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정해준다
한라산 정상에 오르는 루트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듯,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는 길 또한 사람 수만큼이나 많다.
아스팔트가 좍 깔린 도로 위를 자동차로 쌩쌩 달리는 탄탄대로의 길.
정비가 잘된 비포장도로 양옆에 이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는 낭만적인 길.
울퉁불퉁한 자갈길에 곳곳에 웅덩이가 파여있고
길 양옆에는 가시나무가 늘어서 있는 거칠고 삭막한 길.
가도 가도
구불구불한 산길로만 올라가는 힘겨운 길.
이 중에 어떤 길이 내 앞에 놓여있을지는 내가 알 수 없고 선택할 권한도 없다.
이것이 운명이다.
이렇게 불공평해 보이는 운명의 프레임 안에서 내가 가진 자유의지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의미를 가질까?
*표제사진 출처:
Instagram - Paola Ra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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