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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03. 2022

인18 아들의 포복절도 엄마 환갑 축사

가족 이야기

2015년 모월 모일, 어느 아들의 축사 낭독


김00 권사님 소개      


2남 1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일단은 부유한 연탄공장 집 외동딸로 시작. 

외할머니 따라 빼딱구두 신고 깡통시장에 가서 맞춤옷을 입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형제들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어릴 적부터 손에 물 한번 안 묻히고 집안 남자 형제들에게 잡일을 전담시키고, 

이 스트레스로 작은 삼촌은 젊어서부터 머리가 벗겨집니다.      


이때 너무 남들을 부려 먹어서였을까요?….

10년 부려 먹고 지금 35년째 심부름 수행 중입니다.      


영국의 공주처럼 곱게 자라던 시절도 잠시, 

연탄 사업이 쇠락의 길을 걸으며 가세가 기울어 지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첫 번째 시련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악바리 같은 정신력으로 집안 생계를 위해 간호전문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하기만 했던 학창 시절, 

웬 기타 치는 바싹 마른 장발의 남자를 만나 다시 한번 고난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일단은 뭐든지 튕기고 보는 그녀의 마력에 넘어간 한 의대생의 끈질긴 구애 끝에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출까지 감행해 가면서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마터면 누나는 79년생이 될 뻔도 했네요. 


결혼 후 단칸방에서 남편과 동거하며 또 다른 강력한 적을 스스로 낳게 됩니다.      

얼굴도 성깔도 한 박사를 쏙 빼닮은 딸은 새우깡과 딸기 안 사준다고 길바닥에 드러눕기 일쑤,


동네 남자아이들을 맨날 때리고 들어와서 결국은 20년 뒤에 미국으로 유배 생활을 떠나게 됩니다. 

불같은 첫아이 육아 시절을 보내고 다시 한번 순둥이 탄생에 도전하여 성공한 듯하였으나

그 아들은 학창 시절 내내 팔에 기브스를 하고 왼손으로 똥 닦고 지냅니다.      


결혼하면 손에 물 묻힐 상상도 하지 말라며 호언장담하던 남편은 정작 본인 손에는 물 안 묻히며

말씀으로 모든 걸 창조하시는 조물주로 등극, 이 덕분에 아내의 신앙심은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삶이 피곤하고 고달팠을 수도 있으나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잔소리는 

그녀의 유일한 스트레스 탈출구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디서 술 먹고 또 넘어질까 아빠 걱정, 

어디서 누굴 또 때리고 들어 올까 딸 걱정,

어디서 또 축구하다 뼈 뿌려져 올까 아들 걱정, 

한평생을 희생과 걱정으로 살아오신 김00 권사님.     


그래도 이날까지 우리 가족이 파탄에 이르지 않고 잘 살아온 것은 

그 중심에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아빠에게서 뺏어온 경제권을 제대로 누려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 보시기에 아직은 아기 같고 부족해 보이지만 저희도 머리를 장식물로 달고 다니는 게 아니기에 

저희를 성인으로 인정해주시고 저희 걱정은 다 접어두시고, 

사소한 근심 걱정 훌훌 털어버리시고, 

본인만을 위해 즐길 것 즐기면서 자신만의 나머지 인생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가족 모두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면서 좋은 날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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