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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04. 2022

인20 길 위의 의자

인생 이야기

설악산 피골 계곡 초입(初入)

돌아가는 길목에 놓인 두 개의 낡은 의자.

 

누가

갖다 놓았을까?

     

가서 

가만히 앉아본다.     


편안~하다.     


눈에 들어오느니

색색의 들꽃이요

초록 수풀이요

푸른 하늘이요

흰 뭉게구름.     


들리느니

새소리

맡기느니

피톤치드 향.     


참 편안~하다.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지나온 인생이

망막 위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 세상에 얼굴 내민 지 65년

사회에 첫발 디딘 지 39년

내년이면 의사 생활 40년

교직 생활 35년

첫 직장에서 정년을 마치고 물러난다.     


그러고 나면

그분이 준비해 놓은

인생 2막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동안

이 몸으로

참 치열하게 살아왔다.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

 

내 소신껏

누구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살아왔다.

 

올라가 볼 만큼 올라가 보았고

이룰 만큼 이루었다.     


내 가진 능력 

내 노력보다

몇 배 몇십 배로 부어주셨다.     


그때 깨달았더라면

그때 고쳤더라면

그때 참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부끄럽거나 후회스럽게 살진 않았다.     


너 그동안 참 수고 많~았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곧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된다.     


이 후반전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

그저 심판이 '끄~ㅌ' 하면

군소리 없이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길어야

전반전의 삼분의 일도 안 될 것이다.     


지금은 하프 타임.     

쉬어가라고

그동안 몸에 쌓인 독소 마음의 찌든 때

다 빼고 닦아내라고     

이 에덴동산에 날 보내셨나 보다.


편안~하다.

참 편안~하다.     


계곡  올라갈 사람 잠시 숨 고르라고

계곡 갔다 내려온 사람 잠시 쉬어가라고

후반전 뛸 사람 잠시 앉았다 가라고     


저 의자는

저 길목에서

저렇게

기다리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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