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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08. 2022

인06 친구의 눈물

영원한 우정

#2018-09-29    

낮에 서울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10/2(화) 下釜 하려 합니다. 형편이 어떠하신지?”     


전화를 했다.

술이 한 잔 된 목소리다.


“내 술 좀 됐다.”

“야~~ 니는 같이 낮술 마셔줄 친구가 다 있는가베!”     


퇴직한 지 근 한 달.

낮에 갈 데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나로서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 혼자 마신다 아이가.. 


여간해서 혼자 마실 친구가 아닌데.... 거 이상타.

그러면서 하는 말.


“야, 니 보고 싶다.”      


수화기를 타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 참고 참았던 남자의 오열이 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런 울음이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걱정이 된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


“야, 무슨 일 있나?”

“아이다, 술이 한 잔 되다 보니 니 생각도 나고… 내일모레 영감쟁이 제삿날이기도 하고.”     


이제야 뭔가 감이 온다.

어릴 적 부잣집에 태어나 귀공자로 큰 친구.

위로 누나 둘이 있는 막내아들.

그 시절 그 집안에서 친구가 받았을 대접, 안 봐도 각이 나온다.      


그랬던 친구가 대학 들어갈 즈음 견디기 힘든 불행을 겪게 된다.

잘 나가던 아버지의 사업이 내리막 길을 걸으며 업을 정리해야 했고

그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다.


처자식에게는 살던 집 하나 달랑 남겨준 채 전 재산 들고 작은마누라한테 간 아버지.     

덕분에, 대학 다닐 때는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 철거민촌 판잣집에서 살아야 했던 친구.      


갖고 간 재산 작은마누라에게 다 빼앗기고 버림받은 아버지.

그러고는 말년에 홀로 쓸쓸히 죽어가면서 처자식 찾던 아버지.


그 꼴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상주가 되어 장례 치러주던 내 친구.

하지만, 그 영정 앞에 차마 절은 못 하겠다며 상복 입은 채 마당에 주저앉아 몸부림치며 통곡하던 친구.


그래도 그러면 안되다고 달래주던 나.     

그 아버지 돌아가신 게 아마 내 레지던트 때였지?


그렇다면 35년은 넘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아버지가 용서되겠나?          


“야! 울고 싶을 땐 그냥 실컷 울어라. 나도 혼자 운 적 많다. 그러고 나면 속이라도 안 후련해지나?

그라고, 내려와서 다  털어놔라. 우리 사이에 못 할 말이 뭐 있겠노?"


눈물 닦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살아보니, 세상일이라는 게 죽을 때까지 한을 품을 만큼 가치 있는 일 없더라. 슬픔도 원망도 다 지나가리니 영원히 남을 건 사랑밖에 더 있더나? 여기,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네 눈물도 저 빗속에 담아 보내려무나. 친구야”   

  



#2018-10-02

부산역에 친구 마중 나갔다.     


젊은 시절,

학회 참석차 서울에 가면 항상 공항까지 마중 나와 일행을 숙소까지 태워다 주고,

저녁이면 같이 간 과원들에게까지 밥 사고 술 사주던 친구.


그 시절 레지던트 하던 제자 치고 내 친구에게 밥 한번 얻어먹지 않은 사람 없고

그 덕에 나는, '부산의 하리마오'란 소리를 들으며 과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10년을 넘게 그리하니 나중에는 하도 미안해서,

제발 공항까지는 나오지 말아 달라고 사정해야 했던 친구.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마중 나가 내 차로 정관에 있는 산소까지 갔다.

그는 오는 도중 구멍가게에 들러 사 온 소주 한 병 들고 혼자 무덤으로 향한다.      


차에서 내려 친구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앙상한 나무를 뒤덮은 담쟁이가 참 희한한 형상을 하고 있다.

봉산탈춤의 사자탈 같기도 한 저 담쟁이는 누굴 태워 가려고 저렇게 입구를 지키고 있을까?


한 10분 있으니 술을 한잔해서 그런지 울어서 그런지, 눈시울과 눈가가 불그레해서 돌아온다.

그는 그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왔을까?


새삼,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 뼈저리게 느껴진다.     


묘소 참배를 마친 친구와 함께 청사포에 가서 회 한 접시 하고, 내 단골 카페에 가서 맥주 한잔 한 후,

부산역에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 2022-05-31     


“따르릉”

전화벨 소리에 통화 버튼을 누르자 들려오는 친구 목소리.


“야, 밥 뭇나?”     


기질상 사람을 넓고 얕게 사귀지 못하는 나.

이 나이에 친하게 지내는 묵은지 같은 친구 수를 세는 데는 다섯 손가락도 필요 없다.     


하지만, 다들 떨어져 있으니 몇 년이 가도 서로 얼굴 한 번 보기 힘들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안부 전화도 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친구는 아무 일 없이도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야, 밥 뭇나?” 하고 전화를 해온다.

다음엔 내가 먼저 안부 전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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