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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24. 2022

인II 07 해결책은 바로 내 곁에

문제해결

시동이 안 걸린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들를 데가 많았다.

집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삼성전자 서비스에 들러 전화기, 노트북, 휴대폰 문제 해결하고

‘다이소’ 가서 몇 가지 필요한 것 사고

이불점에 가서 베개 호청 입히고

그러고 난 후 점심 먹고 집에 돌아오는 스케줄인데

그 사이 운전과 대기는 내 몫이다.


은퇴하고 나니 남는 게 시간인지라

요새는 마나님 볼 일 보러 나갈 때 자가용 기사 노릇도 종종 한다.


문제는 이불점 앞에서 생겼다.

한(韓) 기사가 처음 찾아가는 그 집은 간선도로변인데 집 앞에 차 댈 데가 없었다.     

잠시면 된다고, 잠시만 기다리라 해서,

다른 차 주행에 민폐 끼쳐가며 깜빡이 켜고 서 있는데

가게로 들어간 마나님이 도통 나올 생각을 안 하네요.


기름이 아까워 시동을 끄고 기다렸다. 

한 참을 기다리니 베개 두 개 든 쇼핑백을 들고 나온 아내가 

물건을 트렁크에 싣고 앞 좌석에 탔다.      


시동을 켰다.

시동이 안 걸린다. 

다시 걸었다.

또 안 걸린다.

순간 당황했다.


이럴수록 침착해야 한다. 

전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먹던 때를 떠 올리며 재빨리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이 차는 시동 걸 때 브레이크를 힘껏 밟으며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지난번에 밟는 힘이 모자라 안 걸렸던 때가 있었지!     


그래서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고 버튼을 눌렀다.

안 걸린다. 

다시 한번 시도. 

안 걸린다. 

한 번 더. 

역시 마찬가지. 

진땀이 살살 난다.


그러면 다른 원인은?

옳거니! 전에 배터리가 나가 안 걸린 적이 있었지.     


테스트를 위해 시동 버튼만 한 번 누르고 다시 누르고 해 보니

그에 따라 순서대로 계기판 불이 들어온다.


백미러를 접어보니 접힌다. 

유리창 내려보니 내려간다. 

결론적으로 배터리는 살아있다는 말씀.     


한 번 더 시동 걸기 시도.

안 걸린다.

이제 완전히 당황했다.

이 일을 어쩌누?     


레커차 부르고, 

기다리고,

차는 끌려가고,

나는 택시 잡는다고 이리저리 우왕좌왕...

정비소에 가서 고칠 때까지 기다리고 어쩌고 저쩌고…


’아이고 골이야!'


다른 방법이 없다. 

자동차 판매원인 권 과장에게 전화했다.


상황을 설명한 후 오만 짓 다 해 보았는데 안된다 하니

자기도 난감한 모양이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럼 시동을 완전히 끄고 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한번 걸어 보시지요.”



맛이 간 사나이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처방?

시동이 아예 안 걸리는데 끄고자시고 할 게 뭐 있노?'


하지만 달리 방도도 없고 하여, '알았다' 하고 차 문을 여니

아내가 피식 웃으면서 한 마디 한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요?” 

      

하기사…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게 있겠나?     

하지만 답답한 가슴도 달랠 겸, 바람도 좀 쐴 겸 차에서 내렸다.


춥다.

밖에 나와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달밤에 체조하는 것도 아니고

'이거 뭐 하는 짓이고? 싶어 도로 들어갔다.


그가 시킨 대로 다시 한번 시동을 걸었다.

    

“부릉” 하고 부드럽게 시동 걸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구원의 종소리가 따로 없었다.

'오잉?? 이거 실화 맞나?'


계기판 게이지를 보니 실화 맞다.

‘도대체 이게 이찌 된 일이고?”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아까 내려다보았을 때와 발의 위치가 달라져있었다.


그 말인즉슨,

지금껏 나는 시동을 건다면서

브레이크 대신 그 옆에 있는 액셀을 밟고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 된다.     

에그, 쪽팔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당장 한 방 날린다.


“아이고~ 이 양반, 완전히 맛이 갔네.

안 그래도 요즈음 하도 잘 까먹어서 치매검사 한 번 받아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콧방귀만 뀌더니만, 츳츳.”



      반성문     

과거에는 책상이나 소파에서 손에 든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조금 전까지 썼던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기억이 안 날 때 잘 찾지를 못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턴 잘 찾는다.

그 비결은 그동안 왜 못 찾았는지 원인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내 손에 있던 물건은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인데

처음에 옆에 좀 찾아보다가 안 보이면 항상 보다 먼 데서 찾아 헤맸던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없어진 물건을 찾을 때,

내 손이나 내 몸이 움직였던 동선을 가만히 생각해 보고 그 안에서 집중적으로 찾는다.

그러면 찾는 물건은 거의 다 그 반경 안에 있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시동이 안 걸리면 제일 먼저 밟을 걸 바로 밟았는지

누를 것 바로 눌렀는지부터 점검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쯤은 으레 그랬으려니 하고는 

다음 단계부터 고차원적으로 놀다 보니 답이 안 나온 것이다.


그러다 자리를 떠나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앉으니

평소의 버릇대로 오른발이 자동으로 브레이크 쪽으로 간 것이다.


안 풀리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해결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나 쉽고 너무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체험했다.


유명한 스타 투수가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투구 폼부터 교정하여 그 늪을 벗어난 사례와 같은 이치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밑바닥부터 자세히 살펴보는 것.

일단 그 자리를 떠났다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 보는 것.

이것이 바로 문제 해결의 지름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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