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우물 Jun 21. 2022

인II 03 쪽 팔린 어느 하루

외모판단의 위험성


scene(1) 미용실


2013년 1월 아주 추운 어느 날, 

서둘러 병원 일을 끝내고 체육관에 운동하러 갔다.

'머리를 깎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동안 시간이 없어 못 깎다 보니 그날따라 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미용실이 눈에 들어왔다.


단골 아닌 집에서 머리 깎기가 좀 뭣 했지만 마침 손님이 없길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런데 주인 아줌마가 손님이 들어오는데도 손님 맞을 생각은 않고 소 닭 쳐다보듯 멀뚱히 차다만 보길래 

"남자 머리는 안 깎아요?" 했더니 그제서야 의자에 앉으라 한다.


모자, 마스크, 윗옷을 차례로  벗고 앉아 머리 깎으면서 몇 마디 말을 시켜보니 처음 태도와는 다르게 아주 싹싹하고 성심성의 껏 머리를 손질한다.


이발을 마친 후 얼마냐 물으니 칠천 원이라기에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만 원짜리 한 장을 주면서 

"거스럼 돈은 머리 손질 성심껏 해 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받아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주인은 "고맙게 받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들에게
"할아버지께 인사해야지." 하며 모자가 함께 "안녕히 가세요." 하고 배웅을 한다. 


손자는 고사하고, 아직 사위 며느리 얼굴도 못 본 내가 할아버지 소리 듣기는 다소 억울했지만 

그들의 매너에 기분 좋게 나오면서 '다음부터 이 집을 단골로 해야겠다' 생각했다. 


 scene(2) 오댕집


이발 후 체육관까지 걸어가는데 춥고 배가 고팠다.

마침 길 가에 오댕을 파는 포장마차가 보이고 여중생 둘이 다찌(たち)에 서서 먹고 있었다. 


불현듯 오댕 생각이 나,  마스크를 벗고 "오댕 하나 얼마예요?" 하니 중늙은이 주인 아줌씨가

"오백 원입니다." 한다.


우선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 둘러보았더니 조그만 플라스틱 쪽자가 몇 개 보인다.

그중 하나를 들고 오댕 통에 넣었더니 당장 주인의 견제구가 날아온다.


"그걸 그냥 담그면 안 되고요,  저기 큰 국자로 퍼서 담으세요."

- 거참, 사람 무안하게 만드네! -


국물을 마신 뒤, 오댕을 하나 들고 양념장을 찾았더니 제법 큰 양념장 통이 보이길래 그대로 푹 찍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눈을 가재비 눈처럼 가늘게 뜨고는 또다시 한 칼 날린다.

 

"그렇게 드시면 아이들이 싫어해요. 양념장은 저기 작은 종지에 덜어서 드세요."

- 오늘 이거 무슨 쪽이냐? -


scene(3) 저녁 식탁


평소처럼 아내가 묻는다.

"오늘은 별일 없었어요?" 


"오늘은 한마디로 쪽 팔린 날."

"아니, 왜요?"


그래서 오늘 미장원과 오댕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준 후 말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야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다른 사람들이 차려놓은 것 먹기나 했지 내가 언제 길거리 다찌에 서서 먹어본 적이 있어야지.  야이 썅, 그래도 그렇지. 입 안 댄 쪽자, 입 안 댄 오댕 좀 담갔기로서니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우리 사람들이 언제부터 위생관념이 이렇게나 철저해 젔냐? 참말로 더러워 죽겠네."


이에 아내가 깔깔거리며 넘어간다. 

"당신, 밖에서  손님 만나고 오면 누가 매너가 나쁘니 어쩌니 하더니만 오늘은 당신이 완전 매너 나쁜 사람이 됐네요."


"그런데 말하는 폼이 어쩐지 뭔가 고소하다는 듯한 감이 오네??  그건 그렇고, 미장원 아줌씨는 손님이 들어오는데 왜 그렇게 멀뚱하니 쳐다만 봤을까? 빈집에 손님이 들어오면 반겨도 뭣할 텐데?"


아내가 또 한 번 쓰러진다.


"난 알 것 같은데요 그 이유!" 

"뭔데?"


"오늘 당신 행색이 말이에요, 눈썹도 허연 데다 귀마개까지 달린 벙거지 같은 모자 눌러쓰고, 얼굴엔 마스크 쓰고, 15년도 더 된 옛날 코트에 마트에서 산 싸구려 스포츠 백 걸치고, 지팡이까지 짚고 들어갔으니 웬 장애인이 물건 팔러 왔나 했겠지요. 어묵집주인도 마찬가지고.ㅎㅎ"


'헐~~’


scene(4)  2015년 어느 날


결혼식에 가기 위해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이발하러 갔다.

아파트 상가 내에 있는 내 단골집에는 손님이 많아 시간이 없는 관계로 없는 처음 가는 옆집엘 들어갔다.

 그런데 주인이란 여자가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멀뚱하니 쳐다보고만 있다.


"이 집에 남자 머리는 안 깎아요?"

그제서야 모자와 지팡이를 받아 든다.

 

먹리를 깎는 동안, 잘도 자불거리길래 슬며시 물어보았다.

"손님 없는 집에 손님이 들어오면 빈집에 소 들어오듯 반갑게 맞아야 하거늘 아까는 왜 그랬소?"

 

그랬더니 하는 말이 

"제가 노는 날에는 복지관에 가서 아주 싼 값으로 이발 봉사를 하는데, 그쪽 노인네들이 이 업장까지 찾아와서는 그 가격에 해 달라고 때를 쓰는 바람에 그런 사람들 오면 영 기분이 그랬걸랑요. 그래서 들어오실 때 언뜻 복지관에서 오신 분인 줄 알고....ㅎㅎ."

 

- 나 이거 원~ - 


순간, 2 년 전에 당했던 위의 일이 떠오르면서  '이렇게 잘 차려입고도 이런 거지 취급받는데 그 때야 오죽했겠나? 아내 말이 정답이네!' 란 생각이 들었다. 

 

결론


                                내가 당해 보니,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인II 02 현실(現實) 속의 뿌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