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 박리 진단을 놓친 전공의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판결에 대해 의사들이 반발을 하니, 어떤 사람이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내용 제대로 읽어보면 그냥 오진으로 저렇게 선고한 게 아닌데 또 의사들이 선동하고 자빠졌네, 정말 의사들에 불신이 갈수록 쌓인다. 환자 딸이 그 병원 간호사 출신이고 심장 관련 검사를 요청했고 (문제의 의사가) 그걸 무시하고 안 했고, 이후에도 자신이 검사를 권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무슨 단순한 오진으로 저렇게 선고했다고... 그 과정 보면 가족이라면 피를 토하겠던데...
의료분쟁 시 항상 자문 의사들의 자문이 있고 대부분은 합당한 판결임. 환자나 환자가족은 멀쩡한 사람을 죽게 해도 아무런 책임도 묻지 말라는 건가? 이런 포스팅 올리는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꽤 오래전에 서울대병원에 근무하던 의사가 그만두고 보험공단으로 이직했는데 그 이유가 서울대병원도 오진율이 상당하고 (다른 의사들이) 오진인 걸 알고도 책임 물을까 싶어 독한 약을 그대로 처방하는 것을 보고 그만뒀다고 책도 나온 적 있는데 실제 상황임.”
반박할 가치가 없는 주장을 하는 이에게 ‘반박’이라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자는 주의지만, 이 글은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반박하고자 한다.
글쓴이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흉통으로 내원한 환자의 딸이 간호사이고, 간호사가 심장 관련 검사를 요청했는데 의사가 하지 않았으면서 검사를 권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기사에 의하면 의사는 심전도와 심근효소 검사를 시행했고 여기에서 이상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보호자가 심장내과 교수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는데 전공의가 이를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서로 내용이 다르다. 두 가지 이유로, 글쓴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첫째, 흉통을 호소하는 이에게 응급실에서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 검사가 심장검사이며, 전공의가 한의사처럼 진맥을 하지 않았다면 심전도와 심장검사는 필수적으로 했을 것이다. 둘째, 기자가 기초적 팩트조차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썼을 가능성보다 의료와 거리가 먼 글쓴이가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응급실에 흉통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은 매우 많다. 원인 파악을 위해 기본적으로 하는 검사가 흉부 엑스레이(폐, 흉강, 심장, 대동맥 등의 이상 소견을 감지하기 위해 촬영), 심전도와 심근효소 검사(심근경색 유무를 알기 위한 검사)등이다. 필요에 따라 심장초음파 검사와 흉부CT 촬영을 추가할 수 있다.
이 환자의 경우, 기본적 검사 후 별다른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자 진통제를 투여하였고, 통증이 완화되자 퇴원조치를 했을 것이다.
대동맥은 심장을 출발해서 전신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피를 운반하는 큰 동맥을 의미한다.
대동맥 박리는 대동맥의 벽이 찢어져 벌어진다는 의미다. 대동맥은 하나의 파이프(pipe)인데, 그 벽이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순간 대동맥의 높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대동맥 벽의 전층이 파열되면 이것을 대동맥 파열이라고 하고 대부분 즉사한다.
반면 대동맥 박리는 3개 층의 벽 중 일부가 찢어지고 바깥 층은 찢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대동맥 박리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점차 진행되면서 얇게 남은 층이 파열이 될 수도 있고, 가지혈관들을 좁아지게 만들어 혈액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응급 치료를 요한다.
대동맥 박리는 흉통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증상이 전형적이지는 않다. 발생하는 위치에 따라 다른 증상으로 나타나고, 흉부엑스선 사진에서 의심되는 소견이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장 확실한 검사는 흉부CT 검사다. 그러나 흉통을 호소하는 모든 환자에게 흉부CT 검사를 시행할 수는 없다.
4.1 사건 의사의 오진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대동맥 박리 진단을 놓쳤다. 그러나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 중 대동맥 박리 환자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다는 점, 진통제 투여 후 환자의 흉통이 퇴원을 결정할 만큼 호전되었다는 점, 퇴원을 결정할 만큼 혈역학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의사에게 중대한 과오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의사의 역할은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을 분류하여 경증환자는 일차적으로 치료하고, 전문과목의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해당 전문과목의 집중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본 사건에서 해당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응급의학과 전공의로서 할 수 있는 업무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4.2. 오진과 오심
의사의 오진과 판사의 오심은 그 영역만 다를 뿐 사람의 실수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그리고 그 실수라는 것은 결과가 판명이 된 후에 뒤돌아볼 때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지, 그 당시 주어진 제한된 정보 등에서 얼마든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의 오진에 대해서는 징역형의 징벌이 처분이 내려지고, 판사의 오심은 ‘면책특권’을 받고 있다. 대법원은 “법관의 재판에 법령 규정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배상법이 정한 위법한 행위는 아니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리고 하급심의 결과가 상급심에서 뒤집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지만, 판사가 오심에 대해 민형사적 책임을 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4.3. 해외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의사의 의료행위는 환자를 해하고자 하는 악한 의도가 아닌 ‘선한 의도’를 가진 행위이므로 의료과오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민사적 책임은 지게 되지만 형사적 책임은 묻지 않는다. 뉴질랜드의 경우 민사적 책임마저 국가에서 부담한다.
이번 사건은 “의사의 오진은 범죄행위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의사의 오진은 중대한 범죄행위이다”라고 선언한 판결이다. 그리고 의사의 오진이 처벌의 대상임을 공표한 판결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다루는 행위다. 또한 의료행위는 한정된 인적, 물질적, 그리고 시간적 자원 아래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오진을 막기 위해 흉통을 호소하는 모든 환자에게 CT촬영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 중 대동맥 박리의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을 가려내어 CT촬영을 하는 것이 마땅하고 인간에게 투시능력이 없는 한 그 분류작업 중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불확실성을 다루는 의사에게 완전무결함을 요구한다면 의사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환자가 아니라 완벽히 의사 자신을 보호하는 진료를 하거나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는 진료는 과잉진료로 나타나게 될 것이고, 과잉진료를 허락하지 않는 시스템 하에서는 의사가 진료를 포기하고 다른 길에 나서게 될 것이다.
즉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자신이 전문성을 가진 응급실 업무를 중단하고 다른 길을 찾게 될 것이며, 응급의학과에 지원하는 의사들이 급감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의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의사가 부재한 상황이 될 것이고 이것은 의사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재앙의 순간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오진이라는 행위에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오진을 막고자 함이 아니라 ‘분풀이’에 불과하다. 의사의 진료행위는 그 자체가 선한 의도를 갖고 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응급실을 지키던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이 충격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이탈과 지원자 급감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위 환자나 보호자가 아닌 다른 환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이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도 이것이 '선동하고 자빠진' 의사의 주장인가?
PS. 글쓴이는 "이런 포스팅 올리는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라고 썼다. 답변을 드린다.
내 아들은 출생시 의사(당시 산부인과 과장)의 오진으로 내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에서 2번의 사망선고를 받은 후에 심한 뇌손상을 입고 가망없는 퇴원을 했다.산통이 임박해서 병원을 찾았는데, 산통이 아니라고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제대탈출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황이 원망스러웠을 뿐, 의사를 원망하지 않았다. 답변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