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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환규 Oct 09. 2023

김태촌과 하마스

영화 '친구'의 끝부분에 동수(장동건 분)이 준석(유오성 분)의 패거리 중 하나에게 칼로 살해되는 장면이 나온다. 조폭들은 언제부터 칼을 사용하게 된 것일까.

김두한 시대에는 조폭간의 대결이 주먹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주먹 문화'는 김두한 시대 이후로도 수십년간 이어져왔었다. 1960~70년대 들어 장비가 동원되었지만 야구방망이나 쇠파이프 정도였다. 


그런 조폭들의 싸움에 처음으로 회칼이 등장한 것이 1975년 범호남파가 신상파를 습격한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범호남파의 행동대장이었던 조양은이 사보이호텔에서 처음 칼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것은 잘못 알려진 왜곡된 사실이라고 이 습격사건을 지시했던 범호남파 두목 오종철(당시 41)이 60대가 되어 2007년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주먹대결이 이어지던 조폭세계에 칼을 들고 나온 것은 서울로 상경한 김태촌이었다. 조양은보다 뒤늦게 서울로 진출한 그가 자신을 빠르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당시 조폭세계에 없던 칼을 꺼내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한 때 3천여명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거느리는 서방파의 두목이 된 비결이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암수술을 받았을 당시) 그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이자, 오종철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진짜 칼잡이는 김태촌이다. 김태촌이 호남 쪽에서 서울로 상경하면서 칼 등의 흉기사용이 시작된 것이고 나 역시 김태촌이 휘두른 칼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



김태촌은 주먹으로 전쟁하던 조폭세계에서 '관례의 약속을 깨고' 칼을 집어듦으로써 조폭세계에서 수직 상승을 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지 이틀 됐다.

이스라엘측 사망자가 700명이 넘었는데 이들 중 음악축제에서 사망한 사람만 300여명에 이르고 납치 등에 의한 실종자가 많아 실제 사망자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망자도 400명을 넘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강력한 복수(mighty vengeance)'를 선언하면서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을 예고했다. 국민들에게 각오를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하마스의 공격은 예전과 달랐다. 아이언돔을 무력화 시킬만큼 단시간에 수천발을 쏟아부은 로켓포의 공격도 달랐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달라진 공격의 방식은 하마스의 부대원들이 낙하산을 타고 음악축제장에 난입해서 민간인을 상대로 닥치는대로 살상과 납치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총으로 무장한 군인이 비무장한 민간인을 살해하고 납치한 것은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가장 악한 행위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민간인 공격'이라는 잔혹한 행위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미디어를 통해 홍보했다.


전쟁에도 일종의 rule, 규칙이 있었다. 이제 과거처럼 '선전포고'를 하는 시대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리고 간혹 실수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해도, 원칙적으로는 민간인을 전쟁에서 배제하고 전투는 군인들끼리 한다는 것이 그 동안 유지되어 오던 전쟁의 원칙이었다. 전쟁의 당사자를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누기 힘든 경우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명백한 경우도 흔히 있다. 전쟁의 방식은 그래서 중요하고 1945년 이후 현대전에서 핵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 이유다. 


이스라엘과 서방은 이번에 하마스가 벌인 공격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는 배경에는 '원칙을 무시한 전쟁의 방식'이 또 하나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태촌이 열어놓은 '칼의 세계'는 등장 이후 사라지지 않고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김태촌이 rulebreaking을 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것처럼 하마스 역시 민간인 학살을 드러내고 있다. 하마스가 열어놓은 원칙을 무시한 '대놓고 민간인 공격'이라는 잔혹행위가 국제전쟁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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