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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제품 Mar 23. 2024

같은 여행지에서 느낀 상반된 감정

작년엔 행복했지만 올해는 실망감이 가득한 도쿄에서의 피아노 협주곡 공연

작년 10월과 올해 3월, 두번의 도쿄여행을 했다. 두 여행에서 모두 피아노 협주곡 공연을 봤는데 두 공연이 도쿄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나에게 안겨주어 기록해보고자 한다.


작년 10월의 도쿄에서의 피아노 협주곡... 모든 우연이 잘 맞아 떨어진 환상의 조합



작년 하반기에 여러가지 인생에 대한 고민과 함께 답답함을 느끼던 찰나 해외여행을 결심을 했다. 사실 해외여행 경험이 홍콩 딱 1번 뿐이었던 나는 막연히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혼자 해외여행을 함으로서 이 두려움을 깨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있던 인생의 고민들이 좀 풀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평소 도시를 좋아했던 나는 도쿄를 여행지로 정했고 뭘 할지 고민하던 찰나 도쿄의 산토리홀(Suntory hall)이 엄청난 음향으로 세계 유수의 지휘자들과 연주자들에게 극찬을 받은 사실이 떠올랐다. 산토리홀 홈페이지를 보며 어떤 공연이 있는지를 보던 와중에 딱 내가 여행을 고려하는 일자에 베토벤 협주곡 공연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베토벤 협주곡은 총 5곡이 있는데, 그중에서 유일한 단조인 3번과 황제협주곡으로 널리알려진 5번을 난 특히 좋아한다. 그런데 마침 이 두 개의 협주곡을 하는 공연을 한다는 것었다! 딱 내가 여행하는 시기에, 베토벤 협주곡을, 그것도 내가 딱 좋아하는 번호 2개를 하는 공연이 있다는 사실에 이 여행은 무조건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 모든 '우연'이 잘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에 여행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여행 당일, 조금의 두려움이 있었던 해외 출국 과정은 막상 어렵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뭔가 가볍게 여행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 당일, 어떤 공연일지 궁금한 마음을 담아 산토리홀에 방문했다. 말로만 듣던 그 음향을 실제로 들으니 음 하나하나가 내 몸을 휘감는 느낌을 받았다. 해외여행 버프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홀 음향이 너무 좋았다. 특히, 피아노 솔로가 오케스트라에 안묻히고 또렷히 들리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다.



피아니스트 역시 엄청 노련하게 연주를 했다. 미치에 고아먀(Michie Koyama)라는 연주자 였는데 알아보니 쇼팽콩쿨 4위까지한 꽤 실력자였다. 그런데 해외 연주는 잘 안하시는지 처음들어보는 연주자였다. 그녀는 원숙한 표현력으로 아주 섬세하게 베토벤을 연주했다. 특히, 아주 여린 부분(피아니시모)를 섬세하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 아주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작은 부분을 섬세하게 표현한는 연주자가 있다는 것에 감동을 느꼈다.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가 끝나고 5번 연주를 시작하기에 앞서 갑자기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어느 관중석을 향해 보내기 시작했다.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그 피아니스트 마저 해당 관중석을 향해 냅다 인사를 했다. 그러고서 5번 황제협주곡이 펼쳐졌다. 5번 협주곡도 그 웅장한 사운드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으며 아주 감동을 받은채로 곡이 끝났다. 그러고서 다시한번 그 관중석을 향해 모두가 환호를 하며 기립박수를 쳤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앞에 앉아있던 관객한테 저 관객석의 사람이 누군지 물었다.



나 : Who is she?

앞에앉은 관객 : She is former emperor's wife.


그리고 그 옆에 그녀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앉아있었는데... 즉 정리해보자면, 전 천황부부가 온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황제'협주곡을 정말 전직 '황제'랑 같이 들은 셈이다. 정말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까 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작년 10월 도쿄의 산토리홀에서 감상한 베토벤 협주곡 공연은 이렇게 모든 우연이 딱 절묘하게 모두 다 맞아서 나에게 일생일대의 경험을 안겨준 공연이었다.






올해 3월 도쿄에서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 좋은 추억은 마음속으로만 담아둘 걸


작년 도쿄가 너무너무 좋았어서 도쿄를 한번더 방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 다소 급하게 도쿄행 비행기를 끊고 다시 도쿄를 갔다. 결론적으로 이번 도쿄 방문은 많이 실망스러웠다. 여러가지 포인트가 있었지만 가장 큰 포인트는 '지나친 기대감'이었던거 같다.



작년에 아주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히 산토리홀에서 연주했던 그 피아니스트가 너무너무 잘 치는 것을 듣고 그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꼭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우연찮게 내가 도쿄여행을 계획한 그 일자에 해당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한다고 해서 이때까지만해도 모든 우연이 또 잘 맞을 건가 보다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 한켠으론 너무 급하게 또 가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애써 그 마음의 소리는 무시하고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연 당일, 이번 공연은 도쿄예술극장에서 열려 그 공연장이 있는 이케부쿠로역으로 향했다. 이번에 연주할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이 었는데 이 곡은 모차르트의 유일한 단조 피아노 협주곡으로 뭔가 슬픈 감정을 애써 꾹꾹 참아내는 그런 감정의 절제가 돋보이는 곡으로 내가 역시 좋아하는 곡이었다. 






그런데 이번 연주는 작년에 들은 베토벤에 비해서는 조금 아쉬웠다. 모차르트는 고전파 작곡가로 페달의 사용이 굉장히 제한적인 연주를 해야하는만큼 틀리는 부분이 쉽게 티가 나는 연주하기 어려운 작곡가다. 그래서 그런지 미스터치가 굉장히 많이 튀게 들려 몰입이 중간중간 깨지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내가 생각할 때의 고점(클라이막스)이 내가 기대했던것 만큼 폭발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도 있어 좀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과 같이 섬세한 연주는 아주 훌륭했다.



공연을 끝나고 나오는데 그 피아니스트가 사인회를 하고 있었다. 보니까 음반을 사면 사인을 해주는 거였다. 사실 여기서 엄청 망설였다. 내가 작년부터 엄청 감동받았던 것을 그 피아니스트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인을 하면서 말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컸는데, 한편으로는 그 음반 내가 듣지도 않을 건데 굳이 사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여기까지 왔는데 말은 걸어보자 하는 마음에 음반을 구입했고 슈베르트 즉흥곡 전곡 음반이 있길래 이 음반으로 골랐다. 너무 과한가 싶은 마음이 들긴했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사인 줄에 서서 내차례가 되었고 일본어를 못하는 나는 영어로 작년 산토리홀 베토벤 협주곡 공연에서 엄청 감동을 받았고 이번에 또 오게 되었다는 말을 전했으나... 그 피아니스트는 세상 떨떠름한 표정을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엄청 상처를 받고 괜히 음반을 사서 돈 낭비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안좋았다. 아마 내생각엔 그 피아니스트는 영어를 잘 못햇던거 같다. 그리고 별로 상대방이 하는 말에 큰 관심이 없고 빨리 사인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거 같다. (못알아 듣는 영어로 뭐라뭐라 상대방이 하면 무슨말이냐고 다시한번 반문했을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ㅎㅎ)



괜히 거금들어 도쿄까지와서 의도치 않게 기분이 상해 아주 마음이 안좋았다. 그냥 좋은 추억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때 아름다운거 같다. 이번 여행을 가지 않았으면 나는 작년 10월의 도쿄에서 받은 감동에 젖어 행복한 기억만 있었을테니 말이다.






조급하지 말자... 될 것도 안된다 ! 


이번 여행을 토대로 너무 조급하거나 애쓰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년에 떠난지 반년도 안되었는데 똑같은 곳을 또 갔고 크게 계획도 세운게 없어서 더더욱 여행지에서 재미를 못느꼈나 싶다. 이 피아니스트의 연주도 이번 3월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반기에도 있었는데 좀 더 여유를 갖고 다시 도쿄를 방문했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도 남으니까. 작년의 좋은 기억 때문에 괜히 조급하게 또 방문하게 기분만 망쳤나 싶다. 여행뿐 아니라 뭔가 인생을 살아갈 때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겠다는 삶의 교훈도 얻은 거 같다. 항상 조급해하면 잘될일도 잘 안되곤 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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