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

그 여름,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긴 우리의 첫 만남.

by 붕어예요

어느 날 아침,

청포리 마을엔 바닷안개가 흩어지고 있었다.
닻을 올리는 어선들의 엔진 소리가

멀리서 둔탁하게 울려왔다.
갯가의 새들이 바다 위를 선회했고,
지붕마다 밤새 앉은 이슬이 햇살에 반짝였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짠내와 비린내가 한데 뒤섞여
몸속까지 바다로 채워지는 듯했다.


바닷안개는 매일처럼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그것을 **‘청포리의 숨’**이라 불렀다.
바다가 들고 나는 숨결 속에, 마을의 하루가 천천히 깨어났다.

“서울서 새 선생님이 온다더라."

그 말이 며칠 전부터 마을 구석구석을 떠돌았다.
상회집 아주머니가 손님에게 건넸고,
양조장 아저씨가 술독을 닦으며 또 전했고,
아이들이 그 말을 받아 서로에게 옮길 때마다
그 소식은 금세 파도처럼 번졌다.

‘서울서 온 사람.’
그 말엔 늘 어떤 낯섦과 반짝임이 섞여 있었다.

서울은 멀고, 들은 것 뿐인 세상이었다.
그 세상의 사람이 청포리에 온다는 건,
바다 건너 별이 내려오는 일처럼 느껴졌다.

당일 아침 아이들은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아침 햇살이 완전히 번지기도 전에
학교 앞 느티나무 아래로 하나둘 모였다.

옥순이가 첫번째로 도착해 있었고,

그 뒤로 덕배가 가장 먼저 뛰어왔다.
붉은 티셔츠의 색이 벌써 반쯤 바래 있었지만,
그 얼굴엔 이상한 기운이 들떠 있었다.

“옥순아, 아침 배로 오신다고 혔지? 우리 마중 가보자.”

덕배가 말했다.
옥순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경자는 이마 위 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선생님 처음 오신디, 괜히 실수 허지마”

그녀는 말끝마다 얌전했지만, 눈빛만큼은 들떠 있었다.
석호는 팔짱을 낀 채 담벼락에 기대 서 있었다.

“공부만 잘허면 됐지 뭐.”

그는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말끝엔 조금의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영수는 한 발 떨어져 있었다.
아직 서울 말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마을에서 제일 조용한 아이였다.
그는 가만히 신발 끝을 내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에서 오신 분이라면... 나처럼 말하겠지.”

그 말에 덕배가 깔깔 웃었다.

“그럼 니가 통역혀~”

그러고는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따라 뛰었다.

바람이 불었다.
골목마다 고양이들이 낮게 울었고,
빨랫줄 위엔 흰 수건들이 펄럭였다.
그 수건들이 바람결에 마치 흰 갈매기처럼 나부꼈다.

아이들이 달리자 흙먼지가 일었다.
마을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부두가 있었다.
그곳에서 서울 선생님을 처음 보았다.

멀리서 배 한 척이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하얀 물보라가 햇빛에 반짝였고,
그 위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다.
하얀 셔츠, 검은 가방,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
그 모습은 낯설었지만 어쩐지 따뜻해 보였다.
배가 부두에 닿았다.

“여기가 청포리, 맞니?”

낯선 억양이 바람결에 섞여 흘렀다.
아이들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순간 덕배가 경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봐~, 진짜 서울 말이여.”


경자가 팔꿈치로 덕배를 쿡 찔렀다.

“조용히혀, 예의 없게.”

선생님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여기서 학교가 머니?”

그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옥순이 대신 대답했다.

“아녀유. 언덕 하나만 넘으면 돼유.”

그의 시선이 내 쪽에 잠깐 머물렀다.
눈빛이 깊고, 말보다 조용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선생님을 모시고 언덕을 올랐다.
길옆 밭에서는 푸른 보리가 물결치고 있고,
멀리선 매미 소리가 들판을 채웠다.
선생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들꽃 한 송이를
바라보다 말했다.

“음~ 냄새가 좋다.

서울에선 이런 냄새가 안 나.
바다 냄새도, 풀 냄새도.”

덕배가 물었다.


“서울은 냄새가 없데유?”

선생님이 웃었다.

“있지. 근데 좀 다르지.”

그 웃음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학교에 도착하자, 교실 안에는 분필 냄새가 가득했다.
햇살이 창문을 스치고, 커튼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선생님은 칠판 앞으로 가서 천천히 글씨를 썼다.

선생님 – 이도현

글씨체가 반듯했다.
서울 사람은 글씨도 참 단정하구나,
옥순은 그렇게 생각했다.

“얘들아, 안녕.”

목소리가 생각보다 더 따뜻했다.

“오늘부터 너희를 가르치게 된

이도현 선생님이야. 잘 부탁한다.”

덕배가 괜히 기침을 했다

“커헉- 네, 선생님.”

교실 뒤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은 화내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이름을 한 명씩 부를게. 대답만 하면 돼.”

분필이 칠판을 스쳤다.
김옥순, 박경자, 김덕배, 최석호, 오영수.

“김옥순?”
“네.”

선생님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눈빛이 부드럽게 옥순에게 닿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건 설렘이라기보다,

처음 듣는 목소리 속에 자신의 이름이 담긴

낯선 울림 때문이었다.

“박경자?”
“네, 선생님."

“김덕배?”
“여기유.”

“최석호?”
“야”

“오영수?”
“네.”

선생님은 이름 하나하나에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교실 안 공기가 조금씩 풀렸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말했다.

“이름이 다 예쁘네.”

그 한마디에 덕배가 킥 웃음을 터뜨렸다.

“서울 사람도 웃을 줄 아네.”

그 말에 모두가 따라 웃었다.
그때, 바람이 창문 사이로 스며들어 종이를 흔들었다.
햇빛이 교실 안에 부서졌다.

그날 오후,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운동장 한가운데서
우리를 불러 세웠다.

“얘들아, 사진 한 장 찍자.”

덕배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진이유?”

“그래. 오늘은 첫날이잖아.
기억은 오래 남는 게 좋지.”

선생님은 낡은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햇살에 반사된 금속 부분이 반짝였다.

“저쪽 바닷가 길로 나가자. 빛이 좋다.”

아이들은 줄지어 걸었다.
경자는 치마를 다듬고,
덕배는 장난스럽게 팔짱을 꼈다가 풀었다.
석호는 무심한 얼굴로 걸었지만,
그 눈은 바다의 빛을 따라가고 있었다.
영수는 맨 끝에서 조용히 뒤를 따라왔다.
옥순은 그들 사이에서 걸음을 맞췄다.

바닷가엔 낮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햇살이 물 위에서 반짝이며 눈이 부셨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 조금 더 가까이 서.
서로 어깨 맞대고. 그래, 그렇게.”

아이들은 바람을 맞으며 섰다.
파도 소리가 귓가에 밀려왔다.
모래 위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선생님은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웃어라.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안 온다.”

찰칵—

그 소리가 여름의 공기 속으로 퍼져나갔다.
파도와 햇살, 아이들의 웃음,
그리고 선생님의 눈빛이 그 한 장에 담겼다.

그날 이후,
그 사진은 오래도록 옥순의 마음속에 남았다.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한 장의 여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