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엄마의 일기

닦아도 닦이지 않는 물

by 붕어예요

석호 엄마는 새벽이면 읍내 장터로 나갔다.
어둠이 채 걷히기 전, 포구를 벗어나면
안개가 논두렁 위로 엷게 깔려 있었다.

바구니에 담겨 있는 생선에서
비린내가 흘러나와 길 위에 남았다.
장터엔 벌써 외지 상인들이 자리를 펴고 있었다

바구니에 얼음 대신 소금 한 줌을 뿌리고,
두꺼운 삼베로 덮은 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읍내 장터엔 벌써 사람들의 목소리가 얽혀 있었다.

“얼마요?”

“오늘 물이 좋아유. 싸게 드릴게유.”

그녀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고,
해가 머리 위로 오르기 전에 대부분의 생선을 팔았다.
남은 생선은 신문지에 싸서 바구니 한쪽에 눌러 담았다.

정오 무렵, 장이 파하자
그녀는 허리를 한 번 펴고 장바닥에 흘러내린
생선물과 흙먼지를 발끝으로 툭 차며 숨을 돌렸다.

“이제 집에 가야지.”

그 길로 읍내를 빠져나와 포구로 향했다.
바람엔 벌써 짠내가 섞여 있었고,
저 멀리 바다빛이 희미하게 번져왔다.
땀에 젖은 손목엔 햇빛 자국이 선명했다.

마을에 닿을 즈음,
햇살이 이미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하루의 열기가 천천히 식어가는 빛 속에서
그녀는 바구니를 부엌 앞에 내려놓았다.

남은 생선의 내장을 씻어 걸었다.
대야의 물이 하얗게 흐려질 때까지 손을 움직였다.

‘이제 하루가 좀 끝났겠지.’

그녀는 잠깐 숨을 고르더니
빨래 보퉁이를 들어 어깨에 걸었다.

늦은 오후,
빨래터에는 이미 몇 명의 여인들이 와 있었다.
물살이 잔잔했고, 버드나무 그늘이 고요히 드리워졌다.
그녀는 돌 위에 앉아 비누를 쳤다.
하루 종일 손끝에 붙은 비린내가 물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물 위로 햇살이 깜박이며 반짝였다.
그때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이 가정방문 다니셨잖여. 우리 집도 오셨어.”

그녀의 손이 멈췄다.

“가정방문이유?”

“응. 지난 토요일에.
덕배네도, 경자네도 다 받았다던디.
석호네는 몰랐는가벼?”

비누가 손에서 미끄러져 돌 위에 떨어졌다.
물결이 살짝 흔들렸다.

“그랬슈...”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그녀는 물 위로 손을 담갔다.
손끝이 차가웠다.

‘그날...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셨단 말이여?
석호는 왜 아무 말도 안 한 거지?’

빨래를 짜던 손이 멈췄다.
주름진 손등 위로 햇빛이 번졌다.
그녀는 급히 빨래보퉁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야의 물이 흘러넘쳤다.

“지 먼저 갈게유.”


“그려유~”

등 뒤에서 대답이 들렸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이미 빨랐다.
마을 골목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숨이 차올랐다.

‘가야지. 지금이라도 학교로 가야지.’

문 앞에서 신발을 꿰어 신으려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햇볕에 탄 피부, 소금기에 트고 갈라진 입술,
대충 틀어 올린 머리카락이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거울 속 여자가 숨을 헐떡였다.

‘이 꼴로는 안 되지...’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서둘러 경자네 집으로 향했다.

“언니, 화장품 좀 빌려도 될까유?”

경자네 엄마가 눈을 크게 떴다.

“웬일이랴, 어딜 가?”

“그냥... 학교에 좀 다녀오려구유.”

오래된 분, 반쯤 남은 립스틱,
몸에 맞지 않는 원피스 한 벌.
분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거울 앞에서 붉은 입술을 그어 보았지만
손끝이 자꾸 떨렸다.

입술을 문지르자 분홍빛이 손수건에 묻었다.
거울 속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서툴고 어색했지만, 최선임을 알기에
그녀는 학교로 향했다.

운동장에선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교실 창가에선 분필가루가 바람에 흩날렸다.

문을 열자 도현 선생이 고개를 들었다.

“저... 선생님, 안녕하셔유? 석호 엄마여유.”

“아, 석호 어머니! 안녕하세요? 이리 오셔서 앉으세요.”

“야... 가정방문을 못혀서 이리 찾아 왔고만유.”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잘 오셨어요. 안 그래도 석호가 어머님이 바쁘셔서
가정방문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석호가유?”

숨이 막혔다.

“... 지는 아무것도 몰랐어유.”

도현은 잠시 말을 잃었다.

“제가 확인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여유. 지가 못 챙겼던 거쥬.”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교실을 나왔다.
복도 끝 창문 너머로 햇빛이 쏟아졌다.
그 빛이 눈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석호가 마루에 앉아 있었다.
책가방을 풀어놓고 연필을 깎고 있었다.

“석호야.”

그녀의 목소리가 낮았다.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왜 말을 안 혀써?”

“...”

“가정 방문 말이여, 엄마가 바빠서 안 된다고 혔다매.
엄마가 부끄러워서 그랬어?”

석호는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그렇게 창피했냐?”

목소리가 떨리더니 손이 먼저 움직였다.
탁— 아이의 등을 내리치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대답 좀 혀!”

아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부지가... 집에 계셨잖여.”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술 드시고 또 소리 지를까봐...
선생님이 보믄 나를 불쌍하게 보실까봐... 그래서.”

석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울음을 터뜨렸다.
숨이 막혔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손등으로 입을 가렸지만 울음이 새어 나왔다.
무릎을 꿇고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휴... 아가, 엄마가... 엄마가 미안혀.”

서로의 어깨가 젖어갔다.
분 냄새가 희미하게 섞인 눈물 냄새가 방 안을 채웠다.
저녁 햇살이 마루 끝까지 번졌다.
그녀의 서툰 화장은 눈물에 녹아
하얀 분이 손등에 뭉텅이로 묻었다.

그날 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얼굴을 닦았다.
물 위에 붉은색이 살짝 번졌다.
거울 속 여자가 낯설지 않았다.
석호 엄마는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수건으로 얼굴 물기를 닦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닦아도 닦아도
물이 계속 묻어 나왔다.

창문 밖엔 달빛이 바다를 덮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과 파도소리가
어느새 하나로 섞여 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옥순은 학교 갈 채비를 하며 가방끈을 고쳐 맸다.
그때, 마당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고개를 들었다.
석호네 대문이 열리며,
석호가 조용히 학교길로 나섰다.
눈가가 살짝 부은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옥순은 무심히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골목 어귀, 영수네 대문 앞에서
경자가 몸을 기울여 대문 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영수야~ 학교 가자~"

그 소리에 영수가 신발끈을 매던 손을 멈추었다.
잠시 고개를 들더니, 조용히 웃었다.
마루 끝에 서 있던 외할머니가
대문 밖까지 손을 흔들며 아이를 배웅했다.

바다는 이미 밀물이 빠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길게 이어졌다.

덕배가 뒤에서 달려오며 소리쳤다.

“야야, 조개 나왔다! 이거 진짜 큰 거여!”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덕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청포리의 아침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