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친구, 덕배 아줌마
영수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잠들었던 그다음 날 아침,
멀리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햇살이 마당으로 쏟아져 내리고,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은 신발 위로 빛이 비스듬히 흘렀다.
백구는 꼬리를 흔들며 밥그릇 주위를 빙글 돌았다.
“백구야~ 밥 묵어라~~”
덕배 어머니는 한 국자씩 밥을 퍼주다 문득
백구 옆에 있는 새끼 강아지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하나, 둘, 셋, 넷...”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다섯 마리였는데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덕배 어머니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잉? 분명 다섯 마리였는디... 한 놈이 어디로 갔디야”
그녀는 허리를 펴며 마당을 훑어보다가
마루에 걸터앉아 감자를 먹고 있던
덕배를 향해 소리쳤다.
“덕배야! 강아지 한 마리 못 봤냐?”
덕배가 느긋하게 입가를 훔치며 대답했다.
“이이~ 어제 친구 줬슈.”
덕배의 말에 덕배 어머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여? 뭘 줘?”
덕배 어머니가 되물었다.
덕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친구 선물로 줬다니께유~”
그 말이 떨어지자 덕배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녀는
백구 옆에서 꼬물거리던 새끼들을 바라보다
이내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걸 왜 줘! 이번 읍내 장날에 내다 팔려했는디!”
그러자 덕배가 배시시 웃으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에이, 네 마리만 갔다 파셔유~”
그러자 덕배 어머니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벽에 세워져 있던 긴 싸리빗자루를 움켜쥐었다.
양쪽 소매를 걷으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놈의 자식이! 지금 뭘 잘했다고 엄니한테 말대꾸를 혀!”
싸리빗자루가 허공을 휘갈겼다.
퍽, 퍽— 먼지가 일고,
덕배가 마당을 이리저리 뛰었다.
“아야야! 엄니, 왜 그런데유!”
“당장 가서 데리고 와! 어여 안 가!”
백구가 꼬리를 내리고 새끼들을 몰아 안았다.
그 시각, 영수네에서는
할머니가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 공기는 차가웠지만
햇살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
이불 끝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영수는 늦잠을 자고 있는 새끼 강아지를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밤새 옆에 붙어 자던 녀석이었지만,
아침이 되니 마치 전혀 다른 존재처럼 낯설었다.
그때 장독대 앞에서 된장을 푸시던 할머니가
영수의 방 창문 쪽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영수야, 그거 아무래도 덕배네 백구 새끼 같은디,
네가 좀 데려다줘라. 덕배 엄니 또 난리 나겄다.
여어 갔다 와서 밥 묵자.”
“예...”
영수는 짧게 대답하고 강아지를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작은 심장이 콩콩 뛰었다.
그게 이상하게 자기 가슴소리와 섞여 들렸다.
마당을 나서자 바다내음이 짭조름하게 코끝을 스쳤다.
영수는 터덜터덜 걸어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마을 입구 초입,
덕배네 상회 쪽에 다다랐을 무렵
누군가 싸우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상회 쪽에서 들려왔다.
“이놈의 새끼, 너 이리 못 오는겨?!”
덕배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다음엔 덕배의 외침이 이어졌다.
“아, 줬다가 뺐는 게 세상 어딨데유!
그렇게는 못 하겠고만유!”
영수는 품에 강아지를 꼭 끌어안은 채 멈춰 섰다.
상회 뒷마당을 향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문틈 사이로 싸리빗자루를 피해
달아나는 덕배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덕배가 서 있는 영수를 발견하고는
영수를 향해 뛰어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영수의 손을 잡았다.
“야, 뛰어!!”
둘은 그대로 달렸다.
먼지와 햇살이 뒤엉킨 길 위에서
발소리와 숨소리가 섞여 메아리쳤다.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
둘은 동시에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잔잔한 그늘 아래로 파도 냄새가 밀려들었다.
한참이나 숨을 고르던 덕배가 먼저 피식 웃었다.
“진짜 죽을 뻔했네...”
영수가 그런 덕배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품 안에서 강아지를 꺼내 들었다.
“얘, 너네 백구 새끼 맞지?”
“이이, 백구 새끼 맞어.”
“혹시 네가 우리 집에 놓고 간 거야?”
“그려~ 아니면 뭐 귀신이 거따 놓고 갔을까베?”
“왜?”
“뭔 왜여~ 걍 선물이지~”
영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작은 강아지가 두 소년 사이를 이리저리 바라봤다.
그러다 영수가 강아지를 덕배에게 내밀었다.
“다시 데려가. 나 강아지 안 좋아해.”
“이잉? 세상천지에 이렇게 귀여운 걸
싫어 허는 사람이 워딨데?”
“여기 있잖아.”
“허참, 니 참 별나다.”
덕배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번엔 영수 품에 강아지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돼야써~ 잘 키워봐. 네가 이러믄 내가 맞은 보람이 없잖여?
나 덕배여, 사내대장부가 한번 준 걸 워찌 도로 뺐는댜? 난 못혀. 그니께 네가 데리고 가.”
그렇게 말하고는
덕배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아이고, 난 아부지나 기다렸다 같이 들어가야겄다.
그래야 엄니한테 덜 혼나지.
나 이래 봬도 귀한 3대 독자여~ 에헴.”
덕배는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다 말고
뒤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영수야~ 아직 애 이름이 없어! 이름부터 지어줘 봐~!”
그 말이 바람에 섞여 멀어졌다.
영수는 달려가는 덕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품속의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작은 숨결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영수가 짧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넌 이름도 없냐...”
느티나무 잎사귀가 은빛으로 뒤집혔다.
바다 건너 햇살이 반짝이며 강아지의 눈동자 위에서
윤슬처럼 흔들렸다.
느티나무 아래를 떠난 영수는 한참을 걸었다.
품 안의 강아지는 여전히 따뜻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덕배 어머니의 목소리,
싸리빗자루를 휘두르던 소리가
머릿속에서 뒤섞여 떠올랐다.
마을 길 끝에서 발을 멈춘 영수는
강아지를 꼭 안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방향을 돌렸다.
덕배네 상회 쪽이었다.
상회 뒷마당에 다다르니,
덕배 어머니가 막 마루 끝에 앉아 콩깍지를 까고 있었다.
햇빛이 흙먼지에 부서지고,
백구는 뒷마당 구석에서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영수는 머뭇거리며 다가갔다.
“아줌마...”
덕배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응? 영수 아니여~? 할매가 심부름시킨겨? 그려, 뭐 주까?"
영수는 강아지를 품에서 꺼내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죄송해요.
얘 덕배가 줬는데... 그냥 돌려드리려고요.”
덕배 어머니가 한참을 영수와 강아지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콧김을 한번 훅 내뿜더니
얼굴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아유~ 돼야써. 이미 덕배가 선물로 준 놈을
뭐 한다고 또 돌려온디야~ 이왕 준 거, 잘 키워봐~
아줌마 걱정 말고. 잉?”
그녀는 강아지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이 놈 봐, 벌써 영수 네가 좋은가벼~.”
영수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그랴~ 요 꼬리 보이지? 꼬리는 거짓말을 못 하는 거여~”
덕배 어머니는 웃으며 손에 묻은 콩껍질을 털었다.
영수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잘 키울게요.”
“그려~ 아, 참 영수야, 이리 와봐.”
덕배 어머니는 상회 안으로 영수를 불렀다.
그리고는 계란 대여섯 개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우리 집 닭이 오늘 아침에 낳은 달걀이여~
할매 갔다 드려~”
그렇게 말하고는 덕배 어머니가
영수 머리를 살짝 쓸어내렸다.
“알지? 영수 니 엄마랑 아줌마랑 친군 거.
엄마랑 진배없는겨~ 어려워 말고 언제든 놀러 와.”
그 순간, 백구가 낑낑거리며 나왔다.
영수 품의 새끼를 보더니 코끝을 들이밀었다.
둘이 코끝을 맞대자 백구가 조용히 꼬리를 흔들었다.
햇살이 두 마리의 하얀 털 위로 부서졌다.
영수는 그 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따뜻했던 덕배 어머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엄마 친구’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바람이 불어와 강아지 털끝이 흔들리고,
눈가에 매달린 눈물이 금세 떨어질까 두려워
영수는 다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저 가볼게요.”
“그려, 얼른 가서 밥 묵고 핵교 갈 준비 혀야지.
할미 걱정하시겄어~”
영수는 강아지를 품에 꼭 안았다.
뒤돌아 나서는 길,
어디선가 바다 냄새가 다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