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첫 썰매

즐겁기만 하면 좋았을걸

by 붕어예요

선생님이 서울에서 돌아온 날,
청포리 마을은 어딘가 어수선했다.

부두 쪽에서 만난 어른들은
서로 조용히 속닥이기 바빴고,
누군가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를 알지 못했다.

“선생님, 서울은 어땠어유?”

“눈은 안 왔어유?”

“기차도 탔어유?”

아이들 질문은 가벼웠고,
선생님은 웃으며 하나하나 대답했다.
아이들 앞에서는 늘 그랬다.

그날 밤,
청포리에는 첫 함박눈이 내렸다.
시린 겨울이 어느새 와있음을 실감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갔다.
마을은 하룻밤 새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논둑도, 돌담도,
학교로 가는 비탈길도
모두 하얗게 덮여 있었다.

“얘들아, 썰매 타자!”

덕배의 외침.
집집 골목을 달리며 덕배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소리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집에 있는
쌀포대, 비료포대,
쓸 수 있는 건 뭐든지 끌어모았다.

학교 뒤편 언덕은
이미 아이들로 가득 찼다.
눈 위에는 먼저 내려간 아이들의 자국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비켜어!”

“내가 먼저 갈겨!”

“넘어지면 지는 거여!”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언덕 위에서 하나둘 미끄러져 내려왔다.
눈이 얼굴에 튀고, 옷 속으로 들어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영수는 포대를 끌어안은 채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청포리에 온 지 2년.
눈은 봤지만, 썰매는 처음이었다.

“영수야, 왜 안 타?”

덕배가 뒤에서 소리쳤다.

“야, 오영수 너 겁나냐? 겁쟁이~
영수는 겁쟁이래유~ 겁쟁이래유~”

덕배가 얄밉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영수는 웃어 보였다.
하지만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포대를 잡은 손에 괜히 힘만 들어갔다.

“영수야, 번만 타 봐 내가 잡아줄게.”

석호의 말에
영수는 잠깐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조금 앞질렀다.

포대 위에 앉자
눈이 갑자기 훨씬 가까워졌다.
언덕 아래가
생각보다 가팔라 보였다.

“간다잉—!”

누군가 밀었다.

처음엔
그저 빠르게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눈이 튀었다.

그리고—

“와아—!”

영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서움은
순식간에 재미로 바뀌었다.

“한 번 더!”

영수는 웃으며 다시 포대를 끌고 올라갔다.

두 번째였다.

조금 더 빨랐고,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끝에서
포대가 옆으로 뒤집혔다.

영수의 몸이
눈 위로 굴러 떨어졌다.

“영수야!”

아이들 웃음이
한순간에 끊겼다.

눈밭 아래에서
영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영수야?”

“야, 일어나 봐.”

아이들이 말을 걸었지만
영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팔을 끌어안은 채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아파... 아파아...”

참으려다 실패한 울음이
눈 위로 터져 나왔다.

“아파아—!”

영수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얼굴이 금세 일그러졌고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아이들은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챘다.

“야, 영수야! 괜찮어? 많이 아퍼?”


“나 팔이 이상해!”

팔이 이상하다는 영수의 말에
석호가 얼어붙은 채 서 있다가
영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영수야, 움직이지 말어.
움직이면 더 아퍼.”

하지만 영수는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덕배는
언덕 위를 한 번 올려다보다가
생각난 듯 갑자기 소리쳤다.

“선생님... 선생님을 불러와야혀!”

아이들은
썰매도 포대도 내팽개친 채
눈길을 미끄러지듯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선생님 사택 문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아이들의 울부짖음에 깜짝 놀란 선생님이
문을 열었자.
그러자 문 앞엔 영수를 제외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당황한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얘들아, 진정하고 천천히 좀 얘기 해봐"

그러자 경자가

"선생님, 영수가 썰매를 타다가 넘어졌는디
팔을 크게 다쳤나 봐유.. 일어나지를 못 혀유...!"

“뭐라고? 영수가?! 영수, 지금 어디 있니??”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높았다.
선생님은
걸려있는 외투를 대충 걸친 채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언덕 아래,
선생님은 영수를 보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영수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선생님을 보자마자 울음을 더 키웠다.

“선생님, 아파요...진짜 아파요...”

“알았다, 알았다...
영수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선생님은
영수의 팔을 보려다 말고
다시 손을 거뒀다.
괜히 건드렸다가
더 아플까 봐였다.

“얘들아, 선생님이 업을게.”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선생님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다 봤다.

선생님은 영수를 업고
눈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몇 걸음 못 가 숨이 가빠졌다.

마을로 내려와
경자네 집으로 먼저 갔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잠겼잖아... 아.. 어쩌지...”

선생님은
문고리를 다시 한번 잡았다가 놓고
아이들을 돌아봤다.

“안 되겠다. 얘들아 덕배네로 가자. 빨리.”

덕배네 상회 앞에 도착했을 때
덕배 엄마는
아이들 얼굴을 보는 순간
사태를 알아챘다.

“아이고, 이게 뭐여!”

영수를 보는 순간
말이 끊겼다.

“덕배 어머니 배는...
배는 언제 들어와요?”

선생님이 물었지만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아직 멀었어유.. 오늘은 안 들어올지도 모르는디..
아휴... 이걸 워쩐댜.. 워쩌다 이런거여?!"

그 말에
영수 울음이 더 커졌다.

“아줌마, 너무 아파요...”

아이들이 다 같이 울기 시작했다.
덕배는 주먹으로 눈을 문질렀고
석호는 영수 발치에서 꼼짝도 못 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마당은 점점 젖어갔다.

덕배 엄마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상회를 나섰다.

"선생님 여기 잠시 계셔유. 덕배야
니는 엄니 따라와라이"

그렇게 덕배 엄마는 눈길을 달리고 달려
선착장에 다다랐다.
멀리서 계류줄을 살펴보고 있는
경자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이고, 계장님! 계장님!!"

덕배 엄마의 외침에
경자 아버지가 계류줄을
단단히 묶고 있던 손을 놓고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쳐다봤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덕배 엄마를
보고는 경자 아버지는 뭔가 일이 생겼구나 라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왜유?! 왜?! 덕배 엄니 뭔 일이유?!!"

덕배 엄마가 숨을 고를 세도 없이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이 달려온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 영수가... 영수가... 하이고 참..."

"덕배 엄니, 천천히 말혀 봐유 영수가 왜유?!"

그러자 덕배가 불쑥 옆을 끼어들며 말했다.

"아저씨 영수가 팔을 크게 다쳤고만유!
당장 병원을 가야 허는데... 우째유?"

경자 아버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뭐?! 워쩌다 그런겨?! 영수는 지금 워딨데?"

그러자 덕배 엄마가 이어서 말을 했다.

"선생님이 영수를 업고 상회로 오셨고만유. 계장님 워째유...? 오늘 눈이 하도 많이 와서 육지에서 들어오는 배도 안 들어올지도 모르는디..."

경자 아버지가 담배를 입에 물고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워쩌긴 뭘 워째유, 배 띄워야쥬"

그러자 덕배 엄마의 눈이 커졌다.

"뭐라 구유?! 이런 날에 배를 띄웠다가 사고라도 나믄
워쩐데유... 한 치 앞도 안보일텐디..."

그러자 경자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애 잘못 되믄 우짤거유? 잉? 우선 애
병원부터 가봐야 할거 아녀유! 덕배야 가서 언능 선생님께 영수 데리고 이 짝으로 오시라고 혀!"

덕배가 잠시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비장한 표정을 하고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이내 왔던 뱡향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덕배는 이 모든 건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겁쟁이라고 영수를 놀리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썰매 타러 가자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뛰는 내내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매주 화, 금 연재였던 청포리가

다음주 부터는 매주 화요일 연재로 변경 되었습니다.

시간은 똑같이 저녁 11시 입니다.

횟수가 줄어든 만큼 더 청포리만의

색깔을 담은 글을 올리겠습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