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새까만 두 개

바다와 새까맣게 타들어간 속

by 붕어예요

옥순이는 숨이 찰 때까지 달렸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발밑은 미끄러웠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영수가 다쳤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영수네 집 대문을 두드릴 새도 없이 밀어 열었다.

“할머니! 할머니!”

부엌 쪽에서 무언가를 하던
영수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잉? 옥순이 아녀? 아이고 넘어진다.
옥순이 니는 썰매 타러 안간겨?"

옥순이는 숨이 가빠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손으로 가슴을 몇 번이나 눌러가며 겨우 말을 꺼냈다.

“영수가... 영수가 많이 다쳤어유.”

그 말에
할머니 손에서 쥐고 있던 행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여?”

할머니는 옥순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영수... 지금 우리 영수 어딨냐.”

“선생님이 업고 덕배네 상회로 갔어유.”

그 말을 듣자마자
할머니는 겉옷을 챙길 틈도 없이 문을 나섰다.

“할머니!”

옥순이는 뒤따라 달리며 소리쳤다.

“할머니, 천천히 가셔유! 미끄러워유!”

하지만 할머니는 듣지 못한 것처럼
눈길을 가르며 앞으로만 달렸다.
짧은 숨이 가쁘게 터져 나왔고,
어깨가 들썩였다.
덕배네 상회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

옥순이가 문을 한 번 더 밀어봤지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여기 다 있었는디...”

할머니는 상회 문 앞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이 잠시 아득해지는 듯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옥순이는
더는 말리지 못하고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선착장이 보일 즈음,
멀리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눈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영수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눈발을 가르며 터져 나왔다.

“영수야—!!”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로 배 하나가 보였고,
선생님과 경자 아버지, 덕배 엄마,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할머니는 그 앞에 도착하자
그대로 멈춰 섰다.
숨을 몰아쉬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경자 아버지가
급히 다가와 말했다.

“엄니, 선생님이랑 지가
영수 데리고 읍내 병원 다녀올 테니께
엄니는 집에 계셔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터졌다.

“내 새끼여!”

눈발보다 더 거칠게 울렸다.

“내 새끼가 아프다는디
내보고 가만히 집에 있으라는겨?!
나도 가. 나도 갈 거여!”

덕배 엄마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할머니 팔을 붙잡았다.

“아이고, 엄니...
눈이 이리 많이 오는디 위험혀유.
계장님이랑 선생님께 맡기고
엄니는 지랑 여기 계셔유.”

그러자 할머니는
덕배 엄마를 똑바로 바라봤다.

“덕배 엄니는 그럴 수 있데?”

목소리가 떨렸지만 또렷했다.

“덕배가 다쳤어도
그리 말할 수 있겄냐고.
여기서 죽는다 혀도
나도 갈 거니께.
언능 가자고.”

사람들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경자 아버지가
이를 꽉 물고 말했다.

“그려유.”

짧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엄니, 갑시다.”

선생님이 영수를 업고 먼저 배에 올랐다.
영수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팔을 끌어안은 채 선생님 목에 얼굴을 묻었다.
할머니도 뒤따라 배에 올랐다.
손은 떨렸지만,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덕배 엄마는 선착장에 서서
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휴... 우짠데... 눈이 이렇게 오는디...”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배가 멀어지는 걸 지켜봤다.
눈발 속에서
배는 점점 작아졌고,
엔진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청포리의 겨울 바다는
그날따라 유난히 어두웠다.

눈은 바다 위에서도 멈출 기색이 없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흐려져
앞이 어딘지, 뒤가 어딘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배는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지만
눈발이 점점 더 굵어졌다.
엔진 소리 위로 바람이 울었고,
배는 한 번씩 크게 흔들렸다.

“아이구...”

영수 할머니가
난간을 붙잡고 몸을 웅크렸다.
선생님은 영수를 안은 채
중심을 잡으려 애썼지만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영수는 여전히 훌쩍거렸다.
아프기도 했지만,
배가 흔들릴 때마다 더 무서워졌다.

“선생님... 할머니...”

“괜찮다, 영수야. 조금만 참아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선생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경자 아버지는
조타간 앞에서 바다를 노려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사정없이 쏟아졌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작게 내뱉은 말이
바람에 흩어졌다.
배가 한 번 더 크게 흔들렸다.
할머니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경자 아버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엔진 소리와 파도 소리 사이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괜히 목소리를 더 높였다.

“다들 걱정 마셔유.
이 바닷길은 손바닥 보듯 훤하니께”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한 불빛이 눈발 너머로 번졌다.

배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읍내 선착장에 닿았다.
병원 안은
유난히 밝았다.
하얀 불빛 아래서
영수의 울음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의사는 영수의 팔을 살피며
차분하게 말했다.

“뼈는 안 다쳤어요.
인대가 조금 늘어난 정도네요.”

그 말에
선생님과 경자 아버지는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깁스만 하면 됩니다.
당분간은 조심하고요.”

그 순간, 할머니는 의사선생님께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하이고... 선생님, 감사혀유..

하이고... 증말루 감사혀유”


그리곤 이내

영수 할머니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경자 아버지가 급히 다가갔다.

“엄니, 괜찮으셔유?”

할머니는 대답 대신
같은 말만 되뇌었다.

“하이고... 하이고...”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본 영수가
할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작은 목소리였다.

“죄송해요...”

그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니가 미안할 게 뭐가 있냐.”

할머니는
영수의 손을 꼭 잡았다.

“놀다 보면 다치기도 하는 거여, 아가.
할매가 미안혀... 얼매나 아팠을까...”

영수는
그 말에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눈은 아까보다 한결 잦아들어 있었다.
경자 아버지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말했다.

“눈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께
언능 가야겄어유.”

다시 배에 올랐고,
이번엔 비교적 조용히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
덕배네 상회.
덕배를 제외한 아이들은
상회 안에 모여 앉아
말도 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덕배 엄마는
창문 밖을 몇 번이나 내다보며
손을 맞잡았다 풀었다 했다.

“아이고... 병원에 잘 도착한겨 워쩐겨...”

누군가 문만 열리면
벌떡 일어날 것처럼
모두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선착장에서 오매불망 기다리던 덕배가
소리를 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저기 배 들어 와유!! 배가 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