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은 친구들이 만나는 법
어제 갑자기 너희가 꿈에 나오더라. 우리 만나자!
실행력 좋은 대학동기 중 한 명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덕분에 한 달 뒤에 우리 다섯 명이 대학졸업 후 처음으로 다 같이 만나게 되었다. 물론 중간중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종종 있었다. 요즘은 카카오톡이나 다른 SNS를 통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시대다. 시간은 10년씩 뭉텅이로 지나가버렸지만 친구들의 현재 모습은 매일 보아 익숙하다.
갑자기 성사된 친구들과의 모임. 나는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새치 염색이라도 해야겠네....
그리고 남편에게 주말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여보 힘 좀 주고 다녀와!"라고 농담을 한다. "무슨 힘..."이라고 했지만 갑자기 그 "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결혼의 시작을 해외에서 했다. 관심 또는 욕심이 없어 신혼살림과 결혼식이 남들처럼 화려하진 않았다. 스드메 없이 동네 미용실 가서 메이크업받고 성당에서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했다. 유일한 결혼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사진은 내가 다니던 어학원에서 사귄 포토그래퍼라는 네팔 친구 부부에게 부탁을 했다. 신혼살림은 당시 거주하던 나라에 유학생들에게 할인을 해주는 중고매장 또는 이케아에서 구입했다. 소박한 살림들이었지만 남편이랑 하나씩 우리 공간에 채워지는 재미가 있었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 벼룩시장에 가는 것도 주말일상 중 하나였다. 거의 100년 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도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였다.
한국에 돌아와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나오는 주제 중 하나는 집, 차, 자녀 등등이었다. 내가 몇 평에 사는지 그리고 "서울에 사니 너 돈이 많구나!" 하며 우리 집 시세까지 물어보는 친구도 있었다. 부모에게 얼마의 돈을 받았는지 지금 산 아파트가 얼마나 올랐는지 등등 '왜 굳이 그런 거 까지 말을 할까?' 싶은 대화들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 애는 이번에 영재원 들어갔어.'
'시부모님이 이번에 차 사주셨잖아...'
이러한 대화들은 앞 뒤 주제와 상관없이 대부분 갑자기 치고 들어와 던져진다. 마치 생각하고 있던 우리 남편이 말하는 그 "힘"을 내 세워 보이듯이 말이다.
친구들을 만나서 예전 이야기를 하고 서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참 따뜻한 일이다. 그런데 마흔이 넘으니 우리가 만나서 하는 이야기의 주제가 참 많이 달라졌다. 나는 주로 친구들을 여럿 만나면 말하기보다 듣는 입장이다. '굳이' 그런 말까지 꺼내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을 뿐인데 친구들은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를 참 궁금해한다. 자연스러운 주제인데 '내가 세상물정을 늦게 알아가나?'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든다.
가수 양희은의 책 <그러라 그래>를 읽어보면 그런 말이 나온다. 친구는 잘 사는지 정도만 알면 된다. 꼭 나이 들수록 꼭 만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지금까지 불편함만을 털어놓았는데 만나려고 하는 이유는 '나의 추억'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난 이번에 이렇게 '힘'을 주고 싶다.
너희는 어떤 순간 가장 행복해?
주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너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보고 싶다.
그래도 내일은 나만 아는 '힘' 하나는 주고 싶어서 미용실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