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볼 때마다 나 같아

볼 때마다 눈물 나는 영화

by Celine

2019년 어느 평일 낮시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다. 나는 아이 유치원을 보낸 뒤 오전일을 하고 돌아와 혼자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눈물이 나 혼이 났다. 그런데 거의 텅 빈 영화관 다른 한편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서 무언의 동지의식을 느꼈다.


나는 왜 '82년생 김지영'을 보며 울었을까?


20대 때 경단녀라는 단어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줄 알았다. 하이힐을 신고 정장을 입고 다니는 흔히 말하는 커리어우먼은 아니었다. 대학전공을 사랑했던 나는 이 일로 '밥벌이'를 하고 싶었다. 왕복 2시간이 걸리는 회사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프리랜서로 전공과 관련된 번역작업을 하며 지냈다. 원했던 방향의 돈벌이는 실패하나... 싶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내 대학전공을 살려 외국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친하게 지내던 대학동기들은 공무원, 학원강사, 은행원 등 다른 길로 취업이 되었다. 그 친구들도 대단하지만 나는 유일하게 전공을 살려 취업한 케이스로 자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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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라는 타이틀보다는 내가 꾸준히 배워온 지식이 일에 투영되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는 나를 일을 '잘하고 못하고'로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곳에서 잘 버텨냈고 남들과는 다른 길로 잘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경력이 쌓이는 만큼 종종 스카우트 제의도 받고 그럴수록 내 자존감은 한 계단 씩 올라갔다.


무엇보다 낯선 땅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나 스스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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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나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내연애를 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한다. 결혼과 동시에 우린 또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언어가 가장 우선이었기에 나는 어학원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중상 정도의 레벨 테스트에도 합격했다.


한 번은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던 당시 시험이 다른 지역에서 있었다. 남편이 이른 아침 아이와 함께 차로 나를 데려다주면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수유를 했다. 점심이 지나고 나선 아이가 먹지 않아 차버린 모유를 짜서 버리느라고 애를 먹었다. 그날도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했던 일이 모유수유였다. 결과는 감사하게도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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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이가 어릴 때 귀국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시간은 눈 깜빡하니 수년이 지나있었다.


난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무렵 5년 이상은 경력이 단절된 그 "경단녀"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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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가 된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잠들었을 때마다 구직활동을 해서 1년짜리 계약직에 합격했다. 타이틀이 있는 회사였고 연봉도 내 기대치보다 높아 너무 행복했다. 비록 1년 계약직이지만 이번 기회가 나의 또 다른 디딤돌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 합격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모두가 축하해 주었다. 난 당장 미용실에 가서 머리부터 할 생각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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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는?


그러게... 엄마가 없으면 아이는? 구직활동을 할 때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오래 맡길 각오는 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반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어린걸 어떻게.... " "다음에 하면 안 되니...."


심지어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님께 아이를 평소보다 2시간 정도 더 맡기겠다고 말씀드리니 하시는 말씀이 "어머니! 가능은 합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의 1분은 아이에게는 1시간과 같습니다."

어린이집 특성상 야간 보육도 가능은 하지만 그렇게 늦게까지 다니는 아이들이 없다는 이유였다. (지금은 아이가 없는지 0세 반도 오픈하셨더라...)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에서 워킹맘들이 아이를 맡긴다는 어린이집도 몰랐던 나였다.


나의 노력으로 합격을 했는데 아이 곁을 떠나려는 엄마를 달가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지금 아이가 이만큼 크고 나니 아이들은 엄마가 일을 해 늦게 데리러 와도 너무 잘 자라준다. 아이들은 그런 힘이 있다. 그때 나도 어렸고 왠지 모를 죄책감에 꼬리를 내려버려 합격 하루 만에 입사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 회사는 광고가 나올 때마다 여전히 내 마음 한편을 시리게 한다.


평생을 내가 노력하고 가고자 하는 길로 가던 나였는데 이때 처음으로 '갈 수 없다'는 좌절을 느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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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

엄마가 도와줄게

너 하고픈 거 해"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엄마의 이 말 세 마디는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내가 그때 가장 듣고 싶었던 세 마디.


꼭 엄마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에게 이 말 한마디만 해 주었더라면... 행동이 아닌 빈말이라도....

아님 내가 조금 더 꿋꿋이 내 소신껏 행동했다면...


이렀을걸 저렀을걸 껄껄껄 후회스러운 일이 참 많다.


하지만 다 지나고 나니 그때는 또 어쩔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테지... 하며 털어버리곤 한다.


'82년생 김지영' 영화의 결말은 김지영이 자기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주는 일을 찾는다.

나는 지금 김지영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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