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내가 해외출산이라니(1)

튼튼이 탄생비화

by Celine
세상에 내가 아기를 낳다니

그렇다. 나는 나름 비자발적 비혼주의를 꿈꾸다(연애와 결혼을 동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엔 결혼을 하고 출산까지 하고야 말았다. 남들은 나를 닮은 아이 그리고 아들일지 딸일지 자녀에 대한 상상을 한다는데... 난 왜인지 모르게 그런 방향으로는 상상의 날개를 펼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운명>이란 말인가... 지금 같이 사는 남성분과는 사실 어느 순간부터 <함께>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자연스레 하는 말이 "우리 나중에 결혼하면~ " 뭐 이러다 저러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의 태명은, 튼튼이

발리에서 생겼다고 해서 발리. 한 번에 우리를 찾아왔다고 해서 한방이 등등 재미있고 센스 있는 태명들이 많더라. 그런데 우린 가감 없이 그저 튼튼하기만을 바랬기에 튼튼이라고 지었다. 그러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 쓰는 글은 튼튼이 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해 두자.


나와 남편은 독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거쳐 유럽이라니 꽤 낭만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나는 급히 잠시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강남에 있는 김범식 어학원을 3개월 정도 다니면서 스터디까지 했다. 남편은 회사를 다니면서 어학원을 따로 다녔고 내가 현지에 도착했을 때 트램 티켓과 슈퍼마켓 회화 정도는 가능했다. 그러한 우리에게 정말 하늘에서 "뚝!" 하고 아이가 떨어졌다. 오 마이갓... 당황스러움과 준비되지 못한 부모라는 생각이 미안함이 들었다.


임신 확인을 위해 병원 세곳에 가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독일은 병원에 가려면 Termin이라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 (아이가 어릴 때 약속 없이 무작정 병원에 갔다가 뜨는 해를 보고 지는 해까지 본 뒤 진료를 받은 적도 있다.) 약속 없이 지인찬스로 찾아갔던 첫 번째 병원은 진료를 봐준다고 하더니 갑자기 다른 병원에 가라며 종이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나오기 어려웠던 상황이라 내가 혼자 찾아간 곳은 아직도 계단의 컴컴하고 눅눅한 냄새가 기억나는 곳이었다. 영어로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하자 서툰 영어로 간호사(같은?)가 응대한다. 독일은 한국처럼 산부인과 치마라는 것이 없다. 안내해 준 대로 의자에 앉아있는데 검은 수염이 그득그득한 아랍계 의사 선생님이 나타났다. 나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간호사와 이야기를 독일어로 주고받더니 키득키득 대기까지 한다. 다행히 검사는 시작되었고 의사는 별말 없이 쪽지 하나를 건네어주었다.


Urgent! You and Baby

그 쪽지를 갖고 있었어야 했는데...

내 인생 가장 황당했던 순간이었다.



- 다음 편에 더 남겨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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