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둘에서 셋이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모든 것이 불안정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내 생일을 맞이했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들고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30분이나 걸려 걸어왔다고 했다. 추운 겨울바람 속 남편의 손이 꽁꽁 얼어있었다. 남편의 생일 축하 노래와 케이크로 마음만은 따뜻한 생일이 지나갔다.
며칠이 지나고 병원 정기검진날이 다가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때 그 악몽 같았던 병원으로 갔다. 사정상 남편은 차에서 기다리고 나 혼자 들어가 검사를 받았다.
- 여기 보이죠? 아기 심장이 뛰고 있어요!
- 네?
남들이 말하는 젤리곰 이전의 콩만한 빨간 불빛이 내 몸에서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분명 자궁 외 임신으로 수술 설명까지 들었는데. 의사는 다행이라고 했고 나도 차로 달려와 남편에게 기쁜 또는 약간은 조심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준비가 안된 부모는 열 달을 낯선 땅에서 단 둘이 의지하며 아이를 품고 그 땅에서 낳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겠냐만 문득문득 임신 당시를 기억하면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 산부인과 진료 때마다 남편이 매번 함께 해 주었다는 사실
- 엄마가 처음인 내가 병원에 갈 때마다 긴장을 한탓에 선생님 설명을 잘못이해하고 다짜고짜 바지를 벗었다는 사실 ㅋㅋ
- 엄마 피부가 아토피라 혈관을 매번 못 찾았다. 두 명 이상의 간호사가 시도한 끝에 주사 꽂기 성공
- 한 번은 남편이 회식을 한다기에 하루 종일 약속된 한국식 치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술에 취해 대리기사까지 대동해서 밤늦게 도착한 남편. 손이 비어있었다. 그게 얼마나 서럽던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엉엉 울었다. 남편도 당황하고 미안했는지 냉동실에서 꽁꽁 언 소고기를 꺼내서 튀기고 양념치킨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밤 12시에. (이 일을 다시 상기해 보니 앞으로 잘못 한 가지는 용서해 줘야겠다.)
- 임신을 하고도 주변엔 친구가 거의 없었다. 늘 혼자였지만 슬프지 않았다. 매일 숲을 걸으며 뱃속의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에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행복과 긴장 사이를 오가게 했던 아이가 태어났다.
아무도 없는 독일, 둘에서 셋이 된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