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의 딸은 엄마를 닮아간다.
지금 진안은 지천에 푸릇푸릇 새싹들이 돋아나는 중이다. 겨우내 쉬고 있던 농부 어르신들도 밀짚모자 하나씩 쓰고 나오셔서 씨앗을 뿌리시고 밭을 정리하신다. 특히 초록의 청보리와 쑥에는 산책길에 자연스럽게 기분 좋은 눈길이 가곤 한다.
엄마는 내가 이곳에 내려오니 서울보다는 본인이 지내시는 곳에서 가까워져 자주 오신다. 지난주에는 오셔서 마을 뒷산에 있는 난 한 번도 올라가 보지 않은 곳까지 가셔서 쑥을 비닐봉지 한가득 뜯어오셨다. 그리고 엄마가 아니었다면 잡초로 알 수 있었던 지창구(사투리인데 냉이 비슷한 것)를 열심히 매의 눈을 뜨고 캐어가셨다.
역시 어른들의 노련미는 따라갈 수 없다.
이번 주에는 같이 농촌유학을 시작한 동기엄마(?)들과 쑥을 뜯으러 가 보기로 했다. 사실 난 쑥으로 만든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중학생쯤 저녁 늦게 학원에서 돌아와 쑥떡을 허겁지겁 먹곤 체해서 새벽 내내 고생을 하고 다음날 영어 듣기 평가를 보기 좋게 망쳤던 악몽 같은 사건이 편식에 한몫을 했다.
그렇지만 일단 쑥을 캐러 가는 길이 기대되어 동행하기로 했다.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보슬보슬 내려 오히려 쑥들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 도시에서 내려온 엄마들이라 (우리끼리 일명 3천 원어치) 적은 양의 쑥을 캐는 일이 재미있었다.
한 엄마가 센스 있게 커피도 내려와 비 오는 정자에 올라가 아메리카노도 한잔했다.
나도 어릴 때 시골에서 오래 살았지만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 그리고 그림 같은 풍경은 저절로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어보니 그러한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쑥을 캤으니 이제 쑥을 먹으러 가자!!
미리 약속했던 비빔밥과 오늘 캔 쑥을 넣고 바삭하게 튀기듯이 지진 쑥전을 만들었다. 처음 먹어보는 쑥전 향기가 은은하니 너무 맛있었다. 여고생처럼 각자의 집에서 달걀, 고추장, 나물 등등 가져와 열심히 비빈 비빔밥도 꿀맛!!!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내고 나니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내가 초등학교 (그 당시는 국민학교였지…) 시절 시골에 살면서 산에 계절마다 산딸기, 송이버섯, 쑥, 고사리 그리고 밤 등등을 찾으러 다니셨다.
벌써 몇십 년이 지난 일인데도 여전히 연락이 닿는 동네 아주머니가 전화를 하실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OO 엄마~ 그때가 참 좋았어. OO 엄마가 ‘어디 가자~’ 하면 따라나서서 산이며 들이며 다니던 그때가…
난 아직도 OO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그때 그 당면비빔국수가 잊히지 않아. 그래서 얼마 전에 딸들이 와서 만들어줬지. “
오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왜 하필 당면으로 비빔국수를 만드셨냐고 여쭤봤다.
"그때 오이가 싸서 오이 넣고 집에 국수대신 당면이 있어서 우연히 만들었지.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었어."
부산에서 유명한 비빔당면은 아직 못 드셔본 엄마지만 추억 속 음식들의 맛은 영원히 기억하실 엄마.
나도 이곳 시골에서 엄마처럼 추억의 음식들이 하나씩 늘어갈 생각에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