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가장 씩씩한 사람은 늘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울어도 금방 그치고, 넘어져도 털고 일어나고, 혼나도 대답 한마디로 끝내는 아이. 어릴 때부터 동생은 이상할 만큼 제 몫을 빨리 감당하는 쪽에 가까웠다. 엄마 심부름을 시키면 군말 없이 다녀왔고, 낯선 사람 앞에서도 제 할 말을 했고, 아픈 날에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동생을 보며 자주 안심했다. 쟤는 괜찮겠지. 쟤는 원래 강하니까. 그 믿음은 다정함이라기보다 게으른 확신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형제자매는 서로를 오래 보지만, 꼭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단정해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동생을 오래도록 그런 식으로 알았다. 예민하지 않은 아이, 혼자서도 잘 있는 아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 부모의 시선이 늘 먼저 향하는 쪽이 있다면, 동생은 대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아이였다. 탈이 없어 보여서, 말을 덜 해서, 제 속을 잘 감춰서. 집 안의 관심은 늘 더 불안한 곳으로 먼저 가기 마련인데, 동생은 오래 그 불안의 바깥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어릴 때부터 울 자리를 잘 찾지 못했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방문을 닫고 혼자 게임을 했고, 친구와 다퉜을 때도 “별거 아니야” 하고 넘겼다. 엄마가 무슨 일 있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했고, 나는 그런 대답을 진짜 아니라고 받아들였다.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그 이유를 알려고 하기보다 편한 쪽을 택했다. 동생이 스스로 괜찮다고 했으니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별것 아닌 장면 하나를 보게 되었다.
주말 저녁이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켜져 있었고, 엄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물을 마시려고 나왔다가 베란다 앞에 서 있는 동생을 봤다. 불도 켜지 않은 창가에 서서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어깨가 작아 보였다. 평소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나 싶어 그냥 지나치려다가, 동생이 손등으로 눈가를 한 번 훔치는 걸 봤다. 너무 짧아서 모른 척할 수도 있는 동작이었지만, 나는 그 장면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
동생이 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정확히는, 운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차린 적이 거의 없었다. 누군가 대놓고 무너질 때는 누구나 그걸 본다. 하지만 조용한 사람의 슬픔은 대개 작은 동작 안에 숨어 있다. 고개를 조금 숙이는 일, 대답이 평소보다 짧아지는 일, 방 안에 오래 머무는 일. 나는 그 신호들을 여러 번 지나쳤을 것이다. 그날 베란다 앞의 동생은 울고 있다기보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일부러 발소리를 조금 크게 냈다.
동생은 금방 휴대폰을 뒤집어 들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내가 “왜 그래” 하고 묻자, 동생은 잠깐 웃듯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 말은 어쩐지 너무 익숙했다. 우리 집 식구들이 가장 자주 쓰는 문장들 가운데 하나. 아무 일 없는 척 넘기기 위해, 서로를 덜 번거롭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도 믿고 싶어서 자주 되뇌던 말. 나는 예전 같으면 거기서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얼굴은 아닌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동생은 한참 대답이 없었다.
창문에 비친 얼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한참 뒤에,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은 나도 좀 버거워.”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 미안해졌다.
동생은 원래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티를 내지 않는 사람에 더 가까웠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버거웠다는 말은 한 번도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 말을 들을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아니, 어쩌면 동생이 내게 들려준 적이 없었다기보다 내가 듣지 않았던 것에 가까웠다. 사람은 익숙한 역할을 서로에게 씌운다. 첫째는 책임감이 많아야 하고, 둘째는 싹싹해야 하고, 막내는 씩씩해야 한다는 식으로. 그 역할은 편리하지만 잔인하다. 한 사람의 실제 마음보다 가족이 기대하는 표정을 먼저 믿게 하니까.
그날 동생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요즘 여러 가지가 겹쳐 좀 지친다고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괜찮은 얼굴을 하는 것도 피곤하고, 집에 와서까지 괜찮은 척하는 건 더 피곤하다고. 그러면서도 웃었다. 습관처럼. 나는 그 웃음을 보며 문득 오래전 장면들이 떠올랐다. 시험을 망치고도 별일 아니라던 얼굴, 친구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말투, 아파도 약만 먹고 잤던 밤. 동생은 한 번도 약한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약한 모습을 들키지 않는 데 익숙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동생에게 해줄 말을 쉽게 찾지 못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는 자주 편의에 가깝다. 대신 한동안 같이 창밖을 봤다. 베란다 너머 아파트 불빛들이 하나둘 켜져 있었고, 아래 주차장에서는 누군가 늦은 귀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 평범한 저녁 속에서 동생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듣는데, 이상하게도 오래 묵은 것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누군가 자기 약함을 알아차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잠시 덜 외로워질 때가 있으니까.
그 뒤로 나는 동생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무던한 아이가 아니라 오래 참는 아이, 덤덤한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조용히 접어두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피곤할 때 더 말이 없어지는 습관, 서운한 일이 있어도 다음 날 먼저 아무 일 없는 척 말을 거는 성격, 자기 이야기를 하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에 익숙한 태도. 동생은 늘 약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여야 한다고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은 이상해서,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믿는 만큼 서로를 쉽게 놓친다.
오래 같이 산다는 건 모든 표정을 본다는 뜻 같지만, 실은 반복되는 표정에 무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씩씩한 아이는 계속 씩씩할 거라 믿고, 무뚝뚝한 사람은 원래 그렇다며 넘기고, 잘 견디는 사람은 앞으로도 잘 버틸 거라 짐작한다. 나는 동생에게 그런 식으로 너무 오래 기대 왔다. 네가 괜찮은 줄 알고, 네가 강한 줄 알고, 네 몫의 흔들림까지도 네가 알아서 감당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한 번도 약한 적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다만 어떤 사람은 약한 순간을 남들보다 더 깊이 감추고, 더 늦게 들킨다는 것을. 그리고 가족이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을 강한 사람으로 믿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가끔은 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요즘 나는 동생에게 전보다 사소한 말을 조금 더 건넨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요즘은 뭐가 제일 피곤한지, 그냥 묻는다. 대단한 답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여전히 동생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여전히 먼저 자기 속을 꺼내 보이는 데 서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안다. 짧은 대답 안에도 하루치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쉽게 결론 내리지 않으려 한다. 괜찮겠지, 알아서 하겠지, 원래 강하니까, 같은 말로 동생을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내가 동생에게 가장 늦게 배운 것은 약함에 대한 예의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씩씩함을 칭찬하는 일보다, 그 씩씩함 뒤에 있는 피로를 알아봐 주는 일.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보는 것보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보는 일. 나는 이제야 그걸 조금 배우고 있다.
동생은 한 번도 약한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그 편이 나에게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자주 편한 쪽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다시 보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이제라도 동생을 다시 보고 싶다. 오래 씩씩한 사람 역할을 해온 한 사람으로, 말보다 먼저 버거움을 삼켜온 가족으로. 그리고 언젠가 동생이 또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더라도, 그 말을 예전처럼 가볍게 듣지 않을 것이다. 그 문장 뒤에 남아 있는 작은 떨림까지, 가족으로서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