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글쓰기 수업을 받게 된 것은 20살 때였다. 지금 수필의 소재가 그 시절에 머무는 것은 지금보다 다양한 일이 많았기 때문인데, 그중 글쓰기 수업은 사소하지만, 생생히 기억난다.
처음부터 글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영어 발상법’이라는 수업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 거기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을 모두‘아이나 센 John Einarsen’이라고 불렀다. 나는 선생님을 본 순간, 이 수업을 한 번만 듣고 포기하려 했다. 영어로만 설명하고, 에세이를 써야 한다는 공포감 외에 색다른 분위기의 선생님이 부담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저널을 쓰는 사진작가란다. 그때였다. 영어에 대한 부담스러움이 사진작가라는 말에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영어로 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게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첫날 수업에서 한 주제에 대해 에세이를 써야 했는데 나의 영어 실력은 그것을 따라 주지 않았다. 에세이란 말만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들렸다. 솔직히 모국어로도 잘 못쓰는데 어떻게 영어로 쓸 수 있느냐 말이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또 오지 않을 것 같아 선생님이 수업에서 설명하신 대로 연구를 해 보았다. 그러다 짧은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영어로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이야깃거리가 되어있어 놀라웠다. 그런데 에세이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생각을 나타내는 글을 쓰는 것이 더 쉬운데 영어로 소설을 쓰려했으니 말이다. 드디어 선생님이 학생들의 글을 확인하러 오는 시간이 되었고 나의 다듬어지지 않은 소설이 내 책상을 떠나 선생님에게로 떠나는 순간이 왔다. 겁먹은 나에게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의외의 답을 주셨다. 여기는 영어 발상법 시간인데, 이 학생은 영어는 부족하지만, 발상은 훌륭하니 이 수업을 계속 들어야 할 것 같다며 반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M 언니를 소개해 주셨다. M 언니는 4학년 졸업반으로 선생님 수업이 좋아서 왔다고 했다. 그 후 나는 M 언니에게 첨삭을 받으며 ‘영어 발상법’ 수업을 무사히 패스할 수 있었다.
그때 아이나센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아이나센 선생님은 영어와 글쓰기를 동시에 좋아하게 해 준 고마운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가끔 갑자기 휴강해서 학생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순히 아들의 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두 번 정도나. 선생님 부부가 맞벌이라 부인이 일하러 나가면 아이를 볼 사람이 없다며 아들을 위해 수업을 쉬는 당당함이 인상적이었고, 그런 가정적인 면이 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나 보다.
그 후 ‘영어 발상법’ 수업은 2, 3까지 이어졌다. 2부터는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미국인 소설가였다. ‘루이트 Philip Jay Lewitt’ 선생님은 어려운 수업을 했다. 아이나센 선생님과는 대조적이었기에 수강 첫날 40명 학생이 10명으로 줄었다. 수업 내용은 선생님이 한 주제를 주면 그것에 대해 가능한 많은 단어를 넣어 2~3장의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을’에 대해 100개 정도의 단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 수업은 과제도 어려웠지만, 선생님이 엄한 성격이었기에 모두 그만두고 말았다. 아마 처음부터 루이트 선생님이었다면 나도 그만두었을 것이지만 아이나센 선생님의 수업에서 글쓰기에 힘을 얻었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은 다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영어 발상법 3, 4’도 마칠 수 있었다.
글쓰기 시간이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쓸 때면 그때 그 수업이 연장선으로 따라온다. 아이나센 선생님의 자상함과 루이트 선생님의 엄격함이 나의 글쓰기 시간에 항상 머무는 듯하다. (*)
2021년 9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