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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Sep 30. 2021

드라마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나서 죽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일뿐이라고 한다. 생전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때에도 셰익스피어 한 명만은 못 넘긴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의 이런 천재적인 재능에서 비롯되었으리라. 5일간의 짧은 러브스토리이지만 1~3년은 되는 듯 착각을 하게 만든다. 완전히 몰입하여 바깥세상과는 일시적으로 차단되어 자유와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발상에서 시작된 ‘드라마’일 것이다.



  드라마 하면 꼭 생각나는 것이 ‘주부(主婦)’이다. 드라마를 본다고 하면 왠지 시간 많아 보이고 단순해 보이는 것이 좋은 의미에서 아줌마 같기 때문이다. 한두 편으로 종결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열 편 정도로 질질 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참으며 보고야 만다. 그러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내용 속으로 푹 빠져서 다시금 행복을 느끼며 만족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법적 효과가 있다고나 할까.

  


  최근 외국에서 한국 드라마가 유행했었는데, 외국 시청자들에게 인터뷰해 본 결과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예뻐지거나 살이 빠지는 현상까지 맛볼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인터뷰를 하는 사람을 자세히 보니 50대 중반의 예쁜 아줌마였다. 나는 나이가 들면 그런 두근거림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젊은 처녀와도 같은 감성이라 깜짝 놀랐다. 그런 드라마를 계기로 자기감정에 솔직함과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다. 인생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보다 엄격하고 생각지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지만 드라마는 책이나 영화보다도 대리만족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볼 때 건강상 꽤 유익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가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다루어 철학적이라면 드라마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같이 자세하고 세밀한 과학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영화 감상 때의 감동은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서서히 잊혀 가지만 드라마는 별 내용이 아닐지라도 잠재적으로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나도 최근에 어떤 어촌지방의 ‘해녀’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수영을 할 때 마치 내가 해녀가 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드라마에서 해녀들이 생각을 많이 하면 산소가 부족해서 잠수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장면에서 대학생들이 시험기간 때 수영이 잘 안 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려 ‘수영을 잘하려면 머릿속을 무(無)인 상태로 해야 한다’는 진실도 알게 되었다. 머릿속이 암기 과목으로 꽉 차있을 때는 수영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운동도 도움이 되질 않겠지만, 특히 수영은 물속에서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에 피하는 것이 낫다는 좋은 깨달음이었다. 바꾸어 생각하면 수영을 하는 동안만은 모든 것을 잊고 ‘무(無)’의 상태에서 운동을 즐길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유익한 스포츠라는 것을 드라마를 볼 때마다 새롭게 느끼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일상을 소중히 다룬 ‘드라마’는 동양의 수묵화처럼 빈 여백을 꽉 채워준다. 빨리 해결하기보다 감정을 소중히 연결하고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느긋하게 작은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영국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 주인집 할머니가 드라마 볼 시간이라며 저녁 식사준비를 서두르실 때가 종종 있었다. 나중에 여쭈어 보았더니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그 동네 할머니들과의 대화에 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기간의 어학연수라 영어도 못 알아들었었는데 할머니의 열정적인 호소가 담긴 눈빛에 어려운 내용의 대화가 이해  되었다니 할머니의 드라마 사랑이 잘 드러나 있었던 예로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셰익스피어 집 앞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야기가 5일간의 짧은 내용이라는 놀라운 사실에 현재의 ‘드라마’라는 매체를 떠올려 보았다. 드라마를 안 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함이 대중가요처럼 그 시대 그 순간을 값지게 한다. 단 다독(多讀)하는 것보다 양질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나은 것과 같이 드라마 선택의 안목을 기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필수조건이지만 말이다.(*)

                                                                                           2013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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