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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Oct 08. 2021

라디오와 나

 “라디오에 내 사연이 나왔어요!”


 갑작스러운 J 문우의 연락에 하던 일을 멈추고 녹음되어 전해온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용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 J 문우가 연결되어 진행자와 대화하는 내용이다. 비 오는 날 어묵을 재료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나만의 요리법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미혼의 J 문우가 마치 가정주부인 것처럼 신나게 요리과정을 설명했다. 이런 의아한 일에 놀랍기도 하지만 그래도 축하를 받고 싶어 보낸 내용이라 즉시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J 문우가 라디오에 나온 것과 그것을 내게 알려 준 것은 나에게 J 문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고 그것은 점점 라디오에 대한 고마움으로 바뀌게 했다. 솔직히 나도 라디오 사연을 찾아 듣기조차 쉽지 않기에 하물며 사연을 보낸다는 것은 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J 문우의 라디오 사연을 통해 그런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다. 핸드폰이나 대중매체로 눈이 피곤한 지금 시대에 라디오는 눈을 쉬게 하고 귀로써 다양한 정보를 편안하게 흘려들을 수 있어 친구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평소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낯익은 사연을 듣게 되었다. CBS 배미향의 저녁 스케치 ‘내 삶의 길목에서’라는 코너인데 따뜻한 에피소드가 많아 저녁 준비를 하며 힘을 얻으려 꼭 청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또 J 문우가 사연을 올렸고 그것이 뽑혀서 연락이 온 것이다. 나도 그 사연을 듣긴 했지만 누가 보냈는지 이름까지 듣지는 못했다. 단지 그 낯익은 사연이 실은 그녀의 글이었고, J 문우도 그 코너를 듣고 있었구나 싶어 기뻤고, 나도 이 프로그램을 즐겨 듣고 있다고 축하한다고 전해 주었다. 그랬더니,


 “May 씨도 한번 사연 보내 봐요!”


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니에요. 저는 그냥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져요. 축하드려요.”



 라고 대답을 해 놓고는, 문득 내가 전에 썼던 수필을 짧게 편집해서 보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마침 선배 문우가 책 낼 때 내 글을 실어 준 것이 떠올랐다. 아무런 기대 없이 썼던 글이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글을 쓰는데 기초를 다져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언덕 위의 집』을 사연으로 보냈고, 그로부터 2주 만인 어느 일요일에 방송으로 나왔다. 라디오 사연은 언제 방송될지 몰라 녹음까지 못 한 것은 아쉽지만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기쁨이었다. 내 사연이 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같은 시간에 전국으로 퍼지는 것이 아닌가. 수필 한 편은 나에게 톡톡히 효도한 셈이다. 

 


 그러나 라디오는 녹음이라도 하면 재생이 가능하지만, 한번 방송으로 흘러간 것은 다시 재방송이 안 된다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라디오 방송국에 문의하면 기록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 사연을 들었다고 하지 않는 이상 다시 그 내용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J 문우도 들었나 싶어 이 소식을 전했더니 사연은 들은 것 같다고 다음부터 먼저 말해 달라며, 축하해 주었다. 결국, 남편도 내가 들으라고 해서 달려와 들었기에 나 외에 내 사연이 라디오에 나왔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또한, 오직 목소리와 음향 기계로만 진행이 되기에 알 수 없는 점이 많다. 미혼인 J 문우가 주부인 것처럼 말하면 그렇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을 라디오의 편안함으로 여기고 싶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음악이나 영화를 선택해서 듣는 시대에 라디오는 나와 다른 사람의 취향을 가볍게 뒤섞어 새로운 길로 안내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귀 기울이면 다른 사람의 숨결이 내 것이 되기도 하고 내 것이 다른 사람의 일부분이 되게 하기도 한다. 라디오는 절대로 하나에만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며 섞이는 영혼의 메아리로 영원한 나의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    

                                                                                2021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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