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Oct 15. 2021

프랑스어

  노란 해바라기는 우리가 프랑스어 선생님을 위해 고른 꽃이었다. 선생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 Y는 가능한 생기가 넘치는 선물을 고민하다 빨리 쾌유할 수 있는 의미를 담아 해바라기로 했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잘 모르지만, 선생님의 고결한 삶과 닮았다. 

  


Y는 대학 시절, 학생과에서 모집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에서 만났고, 같이 프랑스어 수업에서의 출석카드를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친해졌다. 지금도 학교에서 가끔 출석카드를 걷어 가곤 하는데 그때는 수업마다 출석카드를 쓰게 하여 학점 처리를 했었다. 솔직히 프랑스어는 어려워 출석만으로 점수를 준다고 하여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은 너무 쉬웠다. 일주일에 두 시간만 하면 되었으니까. 나는 기초반 담당이었고, Y는 중·상반 담당으로 일이 끝나면 이런저런 잡담까지 하며 즐겁게 보냈었다. 프랑스어 선생님은 중년의 여성으로 우리에게 일을 맡기고 뭔가를 만들고 계셨다. 

   

  “선생님 뭘 그렇게 열심히 만들고 계세요?”

   

 우리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이것은 점자책이야.”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학생이 있는데 교과서가 없어서 내가 손수 점자를 배워 만들고 있지.”

   

   “학교에 눈이 불편한 학생들이 많나요?”

   

   “아니. 한 명이야.”

  

   “뭐라 구요? 한 명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시나요?”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고 빙그레 웃으셨다. 그리곤,

   

   “그 학생이 공부 욕심이 많아서 꼭 해주고 싶어.”

   

 그때였다. 우리가 말하던 여학생이 들어왔다. 눈이 안 보인다는데 머리를 곱게 빗어 리본을 달고, 블라우스에 긴치마를 입고 있었다. 지팡이로 자리를 찾고 있어서 손을 잡아 주려 하자, 

  

  “거기 말고 여기를 잡아주세요.”라며 오히려 불편해했다.

   

  그리곤 선생님과 둘이서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나왔다. 우리도 어려워하는 프랑스어를 이 친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과 선생님의 열정에 놀랐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 친구에게,

  

  “집이 어디니?”라고 물어보았다.

  

  “난 지방에서 왔어. 지금은 학교 근처에서 혼자 방을 구해 살고 있지.”

  

  “정말?”

   

  “그래, 혼자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래. 난 외국어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야. 프랑스어를 멋진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니?”

  

  “그래?”

 

   Y와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 정류장에서 그 친구는 내렸다. 혼자 지팡이 하나를 의지하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 후 프랑스어 선생님은 Y와 나에게도 프랑스어를 가르쳐 주셨고, 몇몇 친구를 더 불러오라고까지 했다. 프랑스어는 발음이 어려워 다 외웠어도 연습문제를 할 때면 술술 풀리지 않고 입안에서 맴돌았다. 내가 어려워하자 Y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그렇게 프랑스어의 진도는 나가지 않고 있다가 아르바이트가 끝날 무렵 자연스럽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이 계실지라도 학생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나 보다. 우리는 선생님이 그냥 좋았을 뿐이었다.  

  

  그런 프랑스어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 Y는 꽃집에 간 것이었고 거기에서 선생님의 이미지를 확인한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어 아르바이트를 한 6개월을 그리워했고, 2년이 흘러 버린 것을 아쉬워했다. 

 

  “다른 꽃은 어떻게 할까요?”

  

  꽃집 주인의 질문에 나는,

  

  “해바라기를 중심으로 화사한 꽃으로 장식해 주세요.”라고 대답했고, Y는,

  

  “그래, 선생님은 다시 건강 해지실 거야!”라며 윙크를 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앓고 있던 병을 숨기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해 왔던 일에 사랑을 느끼셨기에, 최선을 다하셨던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어는 선생님과 해바라기를 떠올리게 한다. 드넓은 해바라기 밭에 평범하지만 특별한 한 송이가 된 꽃이 있다면 그것은 선생님이 비밀스럽게 남겨주신 삶의 열정일 것이다. 너무 간절하다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한 해바라기이다. 아직 프랑스어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2021년 10월 15일    



작가의 이전글 라디오와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