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를 타야 하는 사람은 목적지까지 가느라 정신없겠지만, 바라만 보는 사람은 전차와 함께 그 사람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이번 12월에는 그 풍경 속 한 사람이 될 터였다. 그런데 뜬금없는 소식에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 19에 이어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으로 일본 입국이 어려워져 취소 절차를 밟아야 했다. 아직 일본 교토 京都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에 출장을 떠나려다 일어난 일이다. 이번 일을 다음으로 연기하자니 교토 데마치야나기 역 出町柳 駅에서 북쪽으로 출발하는 1량짜리 에이잔 전차 叡山電車에 대한 기대감이 쓸쓸하게 사라져 버렸다.
“산책이나 할까?”
집을 나서니 파란 하늘 아래 화사한 황금빛 햇살이 나를 반겨 준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지붕이 있는 집 쪽으로 가다 어떤 아저씨를 발견하곤 계속 쳐다본 탓일까, 아저씨는 분명 나에게 뭐라고 말하려 했다.
“이거!”
“저... 저요?”
아저씨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려고 초록색 지붕 근처까지 올라가 계셨다. 그런데 아저씨의 감 따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잠깐 쳐다본 것이다. 아저씨는 가지 채로 감을 땄지만, 너무 많았는지 지나가는 나에게 감을 주겠다는 신호를 보내셨고, 잠깐 고민하다 나는 아저씨의 신호에 달려갔다. 아저씨가 던져 주는 감을 잘 받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굳었던 운동신경의 기억을 더듬어 날쌔게 밑으로 떨어지는 감을 받았다.
“아저씨! 고마워요.”
마스크를 쓴 얼굴로 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아저씨가 나를 또 부르신다.
“이것도 가져가요!”
“어? 네... 네!”
아저씨가 감을 하나 더 주시려나 보다. 난 다시 초록색 지붕 집 쪽으로 가서 감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이번에도 대성공!”
그러다 하나 더 받고 싶어 계속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이제 없어요.”
“앗! 네.”
그래도 두툼해진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가던 길을 가다, 아저씨가 걱정스러워 다시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가 지붕에서 내려오셨는데 넘어진 것 같아,
“괜찮아요, 아저씨?”
라고 물어보니, 손으로 큰 동그라미를 만드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그제 서야 안심을 하고 길을 가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 상황이 웃겨서 오랜만에 한바탕 웃었다. 이런 일이 전에도 많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다 다시 교토의 에이잔 전차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시절 나는 에이잔 전차로 통학을 해야 했다. 고등학교에서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 대학교에 오니 자연스럽게 처음 만난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강의실을 묻다 같은 과목을 듣는 수업이 있어서 친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와는 다른 곳에서도 자주 만났다. 아마 좋아하는 것이 같거나, 비슷한 무엇인가가 있었나 싶었다. 역시 아버지들의 직업과 사는 생활 수준과 어머니들의 성격이 비슷했다. 그리고 자매가 있다는 것도. 이 친구는 장녀였고, 나는 막내딸이라는 것만 달랐다. 장녀라서 인지 아버지나 집안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달라 나에게 언니를 이해하는 마음을 준 친구다. 친구는 알뜰했다. 에이잔 전차가 비싼 편이라, 학교에 자주 오면 차비가 많이 든다고 생각했는지 수업을 신중히 선택했다. 반면에 나는 영어 교직을 듣고 있어서 거의 매일 학교에 와야 했다. 그래서 친구는 회수권으로, 나는 정기권으로 에이잔 전차를 타게 되었다. 솔직히 비싼 학비를 생각하면 차비를 아껴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었다. 차라리 학교 가는 길에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데마치야나기 역 근처에 있는 한국 영사관 출장 사무실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게 되면서 일과 공부가 조화를 이루며 바빠졌다. 어쨌든 친구는 친구대로 회수권에 맞는 동네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나는 정기권에 맞는 동네에서의 찻집과 중간 지점의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게 되었고, 결국 학교보다 학교 밖에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린 마음에 부모님을 돕는다고 절약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에이잔 전차가 지나가는 구간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는데 중간에 내려서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기권을 갖고 있으니 중간에 내려서 쉬었다 가도 됐는데, 집과 학교, 아르바이트 등으로 다른 곳에는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그런 우리가 어느 날 에이잔 전차에서 약속도 없이 만난 날이 있었다. 그날따라 전차 안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 친구와 나뿐.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결국 학교에 가니 그날은 태풍으로 휴강이란다. 그러고 보면 아침부터 바람이 세게 불긴 했지만, 학교에 온 것은 우리 둘 뿐이라니. 역시 친구는 유유상종 類類相從, ‘비슷한 사람은 비슷한 무리를 모은다.’ 類は友を呼ぶ라는 말대로 인 것 같다.
낮에 감을 받은 일을 떠올리니, 아직 내 마음엔 동심 童心이 많이 살아 있고, 주위에 그런 마음결 고운 사람들이 와 주어 흐뭇했다. 오미크론으로 교토의 일정이 취소된 것은 유감이지만, 모르는 아저씨가 불러 모아준 에이잔 전차의 기억으로 여태껏 있었던 안 좋은 기억까지도 전차에 싣고 멀리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음에 올 새 에이잔 전차 叡山電車를 기다리련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의 시선이 볼록한 내 가방에 멈춰있기에,
“감 먹을래?”
라고만 말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아이의 비밀이 어른에게도 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