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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Dec 03. 2021

배우고 싶은 북유럽풍

  올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백화점에 가 보았다. 내가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만 되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몇 년 전부터 그런 근사한 기분이 사라진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백화점에 가서 그때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었다. 아마도 집에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커다란 나무에 예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을 것이고 깜빡깜빡 근사한 불빛에 마음이 부풀어 올라 뭐라도 하나 사고야 말 것이다. 그 물건이 무엇이건 간에 옛날과 같은 크리스마스 기분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상관없을 것도 같았다. 그런데 백화점에서도 예전 같은 크리스마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코너 끝에 있는 가게에 시선이 멈추었다. 조금 전부터 사람들이 많아 궁금증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북유럽풍 카페였다. 입구에는 북유럽에서만 살 수 있는 온갖 잡화가 있고 안쪽에 들어가면 안락한 의자가 있는 커피숍이다. 여기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북유럽풍 디자인이었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색의 조화가 편안함을 주었다. 거기에 내 눈을 놀라게 한 것은 가격이다. 물건이나 음료의 가격이 다른 곳보다 훨씬 비쌌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많다니. 진열된 물건들은 정성이 느껴지는 물건부터 한 번 사면 평생 고장 나지 않는 투박하면서도 실용적이며 심플한 것이 특징이었다. 겉모양은 단순하지만 만드는 사람은 몇 번이고 고민했을 것이다. 내가 ‘로얄코펜하겐’을 어렵게 산 것도 그것이 덴마크제인지 몰랐을 시절부터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너무 아껴서인지 투박하고 잘 깨지지 않는 것만 사용하게 된다는 사실도. 이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크리스마스 장신구나 구경하기로 했다. 그동안 익숙했던 크고 화려한 트리가 아니라 작고 단조로운 것들이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지만 꽉 차 보이는 매력을 갖고.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크리스마스트리가 상냥하고 말 많은 성격이었다면 지금 새롭게 보게 된 북유럽풍 크리스마스트리는 겉은 좋아 보이지만 말을 아끼는 성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북유럽풍이 사랑받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북유럽풍 하면 우선 색으로 다가온다. 화려한 색이 절제된 배합으로 나타낸다.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섬세함도 있어 보인다. 특히 겨울 물건에 있어 그 가치가 더하다. 북유럽 사람들은 겨울을 좋아하는지 색의 다양함과 정교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북유럽의 겨울은 어떤가. 남편이 북유럽 회사에 다니고 있어 하는 얘기는, 어떤 나라는 흐린 날이 많아 햇빛을 보기 힘들고, 하루에 20분만 햇빛이 비치는 날도 있는데 그 잠깐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창가에 유리구슬을 두어 빛이 이동할 때마다 생기는 신기한 빛깔들을 즐기기도 한단다.

    

 북유럽의 물건이나 이미지는 풍요로움과 절제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데 실제로 그곳은 기후적으로는 혜택 받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는 것은 신기하기만 하다. 아니면 이것이 진리인가.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과도 같이 좋은 것을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묵묵히 내일을 준비한다면 결국은 모든 것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겠다. 그 힘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역할을 한다. 북유럽 사람들은 비록 어쩔 수 없었겠지만, 겨울에 햇빛이 조금만 비춘다고 날씨를 닮아가기보다 잠깐의 순간이라도 존재하는 빛의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것과 그것들이 멋진 작품으로 남아 있다는 것에서 그들의 자신감이 결코 환경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의 산타할아버지가 북유럽에서 시작된 것을 보아도 결코 비교하거나 기죽지 않는 인내력과 마음의 여유가 느껴진다. 우리는 더 좋고 더 나은 생활을 꿈꾸지만, 현재의 소중함도 가끔은 깨달아야 한다는 것도.

   

 겨울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춥고 고약한 바람을 피해 집에 들어오면 따뜻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밖에는 아직도 추워서 벌벌 떠는 사람이 있는데도 어려운 시간을 잘 견디고 집에 도착한 것과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까지 먹을 수 있다는 기쁨까지도 누릴 수 있다. 이런 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이겠다. 단지 계절이 아니더라도 어렵고 풀리지 않는 것들이 고통의 시간을 거쳐서 해결되었을 때 느껴지는 기분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한가 보다. 꼭 행복하려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정직하게 붙들었을 때만 생기는 내면의 성장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새 표정으로 드러나겠고 그것이 얼굴의 인상으로 남게 되겠지.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좋은 인상의 비결이고 오늘날, 북유럽풍에만 숨은 비밀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친구 C가 내년에 북유럽 여행을 함께 가자고 하지만 쉽게 응할 수 없었다. 솔직히 북유럽 회사는 월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남편과 아들과도 약속만 했을 뿐이다. C의 가족은 북유럽을 좋아했던 것 같다. C의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으로 아버지가 평소에 소중히 여기시던 북유럽에 관한 책을 남겨 두셨다고 한다. 그랬더니 우연인지 몰라도 큰 언니는 지금 북유럽에서 일하고 있고, 작은 언니도 한국에 있는 북유럽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절약하는 습관이 생겨 겨울에도 난방을 약하게 틀어 추웠다고 한다. 홀로 되신 어머니가 조금 남은 유산을 아끼며 C를 포함한 세 자매를 대학까지 보내셨던 것은 검소한 생활의 결과였겠지.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꾸던 북유럽 생활이 책을 통해 자식들에게 전해졌다니. 그래서 C네 가족의 북유럽 여행에서 이번에는 빠지기로 했다. 우리 가족에게도 언젠가는 기회가 또 오겠지. 이렇게 다음 여행을 기대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것도 북유럽 여행을. C처럼 가고 싶을 때 가는 것도 좋지만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고 기다리거나 준비하는 마음은 나중에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 값진 인생의 보석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심플한 북유럽풍 장식을 해야겠다. 어디선가 북유럽으로 향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반짝반짝 들키지 않도록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                                                                                                                                                                 2019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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