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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May 27. 2022

연희동에 가고 싶은 이유

 살다 보면 우연이란 게 없다. 요즘 같은 상황에, 벌써 몇 해째 연희동 근처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올여름에도 계획을 잡아버린 것을 보면 연희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 

   


 연희동에 처음 가게 된 것은 시어머니를 따라 장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결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며느리와 추석을 준비해야 하는 시어머니의 색다른 나들이였다. 며느리는 명절의 부담감을 느끼고 나섰지만, 시어머니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파란색 바가지’만 달랑 골라 오셨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

   

파란색 바가지

 

 며느리는 시어머니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쫓아가다 마트 안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파란색 바가지만을 보고 찾아낼 수 있었다. 마침 집에 있는 식재료를 요리하기에 이런 바가지는 여러 용도로 필요했었다. 결국, 바가지로 쓰인 것은, 단수 斷水가 되어 물을 담아놓고 퍼 담을 때이고, 나물을 다듬거나 무칠 때 그 많던 소쿠리나 큰 그릇들보다 이것이 요긴하게 쓰인다. 이런 값싸고 촌스러운 바가지가 실은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고나 할까. 며느리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었던 것은 살림하고 꽤 지나서이다. 어머니께서는 오랜 살림의 경험에서 ‘모양’보다 ‘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한 번에 나중까지 생각한 시어머니의 안목을 느끼게 한 파란색 바가지.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마트의 이름도 그때 그대로인 ‘사러가 마트’로 남아있다. 사러가 마트에 아직도 파란색 바가지가 있을지도 모를 만큼 변화가 적은 이 마을의 정서가 마음에 들어 여름휴가를 오면 꼭 이곳에서 장을 보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일상에서 나의 자취를 알아주는 마을의 풍경들이 기쁘다. 그리고 어디선가 어머니가 장을 보고 계실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이 멎어버린다면 잠깐이라도 그 안의 공기에 취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희동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남편의 사무실이 근처에 있어 집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주위보다 연희동은 장보기 가장 편리했던 장소였을 뿐이다. 물론 신촌이 백화점도 있어 더 번화했지만, 물건의 종류가 너무 많아 현기증을 느끼곤 했기에 중간에 끼어있는 연희동은 적당히 평범한 동네였다. 다행히 마을버스가 다니기도 하고. 세월이 흘러, 연희동에 대한 나만의 이미지는 바뀌었다. 단지 편안한 동네라는 모호한 느낌에서 그동안 보고 들은 정보가 하나의 굳건한 형태가 되어 버렸다. 마치 아기가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상황을 기억하여 말을 이해하듯 연희동에 관한 몇 년간의 경험은 그곳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 않아도 잠재적으로 인식되었다. 

   


 학교는 혜화동인데 연희동에서 다니는 여학생이 있었다. 집이 먼데도 방과 후 교실에까지 와 주어 친하게 되었다. 그 여학생은 영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잘하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어 공부를 따로 하고 있다고 했다. 외국에서 자라서 그런지 표정이나 행동이 독특하고 서툰 한국어가 인상적이고 예뻤다. 영국이라고 하니 피터 래빗 Peter Rabbit이 연상되고 이 여학생이 토끼처럼 귀여워 연희동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뭐라고 할까. 귀엽고, 자유롭고, 고귀한 분위기. 그리고 한국적인 면은 살아 있으면서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 연희동에 다시 오게 된 것은 이런 계기다. 신기하게도 언덕을 내려가면 또 다른 세상이 나온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면 세검정도 나오고 결국 삼청동이 있는 광화문 거리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강남이 개발되고 좋다지만 서울은 역시 강북이 더 멋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의 이런 경치를 사랑한다. 

   


 그런데도 연희동은 만만한 동네가 아닌 듯하다. 우연히 발견한 ‘연스시’라는 초밥집이 있었다. 새로 생긴 가게였는데 양도 많고 재료도 싱싱해, 소문이 났는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초밥집 메뉴에서 생선이 빠져 있었고 주인아저씨는 다리를 다쳤는지 목발에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참았다. 다음에 방문하면 초밥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주인아저씨는 당분간 초밥은 팔지 않고 과일 가게로 운영한다고 한다. 초밥 장사를 하느라 집안일을 소홀히 했더니 부인이 병이 생겼다고. 말은 그렇지만 전에 다리를 다치거나 한 사실을 떠올리니 사실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남편과 주위를 돌아보니 그사이 초밥집이 많이 생겼다. 주인아저씨가 이 동네에 새로 이사와 텃세를 심하게 받는 듯했다. 그런데 불평이나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있다. 과일이라도 사주고 싶어 몇 개 골랐다. 과일도 초밥처럼 싱싱하고 맛있는 것들만 팔고 있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착하게 살면 복이 오고, 실력이 있으면 성공한다고 믿고 싶지만, 초밥집 아저씨의 이런 불쌍한 상황은 누구도 말해 줄 것이 없을 것 같다. 연희동에서 인정받을 때까지 과일가게로라도 참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결과이기에 그 중간 과정의 방법은 각자의 노력으로 찾아내야 한다. 인내와 끈기로 그 길을,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발견할 날을 기다려 보는 것이다. 자주 가던 맛있는 초밥집이 이젠 과일가게가 되었지만 배울 점이 많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겸손함과 역경을 알 때 그 큰 산을 넘을 힘이 생긴다는 것. 그렇기에 인생의 모든 것은 가치가 있다.  

   


 바로 그 순간,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새로운 길이라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썼던 시라는데 하숙했던 장소도 연희동이라 했다. 그러니까 이 길은 윤동주와 나와 관련된 많은 사람이 거쳐 간 길이었고 앞으로도 있을 길이다. 이런 이유로 연희동을 다시 찾게 되었고 그 거리를 지나칠 때마다 단단해진 나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조용히 눈을 감고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읊어 본다. (*)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연희동 단골 떡집에 잠깐 갈 일이 있어 들은 얘기인데, ‘연스시’의 사장님은 결국 이사를 했단다. 새로운 곳에서 돈가스 가게를 차려(포방터) ‘연돈’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요즘은 제주도로 가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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