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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Aug 15. 2021

그 찻집 2

 차(茶)를 마시는 것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차(茶) 연구가’가 되었다. 대학에선 ‘고려 시대 다도’를, 대학원에선 일본어 교육을 전공하여 ‘일본 사립초등학교 다도교육’에 관한 졸업논문을 썼다.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 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성향이 있어서 융통성 없고 부족해 보이지만 바꿀 수 없는 단점이자 장점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초등학생들도 갖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선뜻 마음이 안 가는 이유도 나의 이런 부분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또한, 이젠 더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싶지 않다. 그만큼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기에 그것에 대한 책임이라고까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茶)’에 관한 신선한 정보라면 직접 찾아가거나 맛보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어렵더라도 그쪽이 내겐 더욱 자극 된다. 성경에 나오는 ‘좁은 문’에 관한 관점이 다도 정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차(茶)’는 내 평생의 주제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차(茶)를 본질적으로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1학년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1000’이라는 작은 찻집에서이다. 아침에는 커피를 제공하는 모닝세트, 점심에는 점심 세트가 있었다.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세 딸이 번갈아서 도와주는 가정적인 분위기여서 아르바이트생은 필요 없을 것 같았지만 ‘맛집’이라 잡지에도 실릴 정도라 꽤 손님이 많았다. 나는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거의 매일 일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일 한 것이 아니라 일본가정문화와 차(茶)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받으러 간 3년간이었다. 아침에는 지각도 자주 했고 점심에 가장 바쁜 12시에 자리를 비워야 했으니 어떻게 보면 폐만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딸들을 잘 키우신 주인아저씨는 나의 이런 행동들을 하나하나 고쳐주셨다. 그때마다 나도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한국과 일본의 예의범절은 틀렸기 때문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1년째 되는 날 커피 외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걀 샌드위치’와 ‘카르보나라’ 만드는 법을 알려 주셨다. ‘달걀 샌드위치’는 점심 도시락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만들어서 먹어 보라고 하셨다. 11시 반 정도가 되면 시집간 큰딸이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오는 시간이라 일손이 부족하지 않았기에 부엌에서 내가 꾸물거리고 있어도 방해가 되지 않았나 보다. 아무튼, 그때는 몰랐지만,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 좋으신 분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찻집 이름에 호기심이 생겼다.

“왜 1,000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셨나요? 1,000엔 갖고 와야 커피와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인가요?”라고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일본에 센노리큐(千利休)라는 모모야마 시대의 다인(茶人)이 있었는데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도 다도를 가르쳐 일본 다도를 넓게 전파하였다고 한다. 그의 성(姓)이 센(千)이라 숫자 1000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셨다고 한다. 본인도 다도(茶道)를 좋아하시고, 딸들에게도 다도(茶道)를 배우게 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찻집이지만 다도 정신이 깃든 정결한 분위기를 추구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야 주인아저씨가 왜 그렇게도 엄하게  교육하셨는지 이해가 갔다. 가끔 이상한 손님이 왔을 때 다른 손님에게 방해된다고 쫓아내신 일도 이해가 되었다.

   그 후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 찻집을 잊고 지낸 것은 아닌데 바쁘게 살다 보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 찻집이 나에게 끼친 영향은 이렇게도 큰데 과연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주인아저씨가 살아 계시다면 80세는 넘으셨을 것이고 아마도 큰따님이 운영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믿고 교토 방문 때 찾아보았다.

   20년 전 아르바이트생처럼 아침 9시에 맞추어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다. 간판이나 찻집은 그대로인데 안타깝게도 9시가 되었는데도 셔터는 굳게 닫혀있었다.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20년 전과 다름없는 내부구조였다.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자전거를 뒤뜰에 주차해 놓고 찻집으로 향하려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80세가 넘으신 백발의 할아버지가 셔터를 열고 계시지 않는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찻집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20년 전 내가 지점토로 바이올린과 숫자 1000을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 드렸는데 여전히 입구 쪽에 걸려 있었다. 메뉴나 실내장식 그릇 하나하나까지 변한 것은 할아버지의 모습뿐이었다. 주인아저씨가 아닌 할아버지는 나를 금방 알아보셨다. 어제까지 눈 수술을 하셔서 몇 개월간 영업을 못하셨는데 오늘 만난 것은 행운이라 하셨다. 그동안의 20년이 어제같이 좁혀진 순간이었다. 이렇게 만났는데도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다도(茶道)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초연함인 것 같다. 기뻐도 크게 기뻐하지 않고 슬퍼도 크게 슬퍼하지 않는 단지 모든 상황에 대한 낮아짐과 감사함 같은 것 말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의 한 번의 만남을 마지막인 것처럼 소중히 여기라는 다도(茶道) 정신은 어쩌면 긴 시간 어렵게 선택한 귀한 만남의 영원함일지도 모르겠다.(*)     20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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