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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Aug 20. 2021

꽃집 아가씨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데 M은 나와 어떤 인연인지 20년째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꿈꾸는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 평범한 대학생으로 가능하다면 항공사에 들어가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꿈이었고, M은 꽃을 좋아해서 멋진 꽃집을 열고 싶어 했다. 나와 M의 비슷한 점이 있다면 화장을 안 한 얼굴에 항상 보기 좋은 옷보다 입기 편한 옷을 입고 밥보다는 맛있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학생이었던 나와는 달리 일찍 직장을 얻어 사회인이 된 다른 친구도 있었는데 항상 직장의 어려움을 들어주어야 했기에 긴장이 되기도 했다. 반면에 M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신선하고 힘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 M이 결혼하던 날, 내가 그녀의 절친한 친구였다는 것을 피로연 때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서른 명 정도 모인 자리에 신랑 측의 사장님 자리에 해당하는 곳에 나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친구라고는 나를 포함해서 고작 세 명뿐이었다. 어릴 때 친구와 나 그리고 지금 일하고 있는 호텔의 동료뿐이었지만 M다운 선택에 이해가 갔다. 단출 하지만 누구의 결혼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돈된 느낌이 든 이유는 꽃을 M이 직접 꾸민 것도, 서두르지 않고 신랑감을 기다려 적당한 사람을 만난 것도, 프랑스 요리를 준비한 것도 아닌 M이 17년간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직업으로 해 왔다는 진실성에서이다.
     한 번은 꽃집을 운영하는 사람들끼리의 꽃꽂이 대회에 M을 따라 참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기가 일하고 있는 꽃집 주인에게는 비밀로 했다고 한다. 마치 꽃집 주인과 경쟁자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드디어 처음으로 꽃꽂이 대회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최대한 멋지게 꾸미고 있는 가운데, M은 주인집 아줌마의 꽃꽂이 실력을 엿보듯 집중하고 있었다. 결국 멋진 작품들이 심사위원들을 곤란하게 하는 듯싶더니 의외의 작품이 최고상을 받게 되어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심사위원은 꽃을 멋지게 꾸미는 것보다 ‘사랑’이라는 제목처럼 꽃을 얼마나 사랑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는가에 포인트를 두었다고 한다. 상을 받은 사람은 다른 참가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작품뿐 만이 아니라 주위까지도 깨끗이 청소 해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심플하지만 꽃과 식물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고, 그런 세심함까지 크게 평가하는 고수들의 예리함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한편으로 M은 꽃집 아가씨가 마음씨 좋고 예뻐 보이지만 실은 꽃이 시들기 전에 팔아야 하고 못 팔면 버려야 해서 성격이 급해지고, 미신이긴 하지만 가위로 자르는 직업은 인연을 자꾸 잘라버려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똑같은 환경에서도 칭찬과 사랑을 듣고 자란 식물이 더 잘 자란다는 어떤 과학자의 말에 감동을 받아서라고 한다.
     M의 이러한 순수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이후 꽃집 주인이 M에게만은 꽃을 맡기지 않고 장례식에 화환을 배달하는 힘든 일만 시켰다. 아르바이트생이 꽃에 관심을 두고 열심히 하는 것을 칭찬해야 하는데 그 주인은 M의 남다른 꽃꽂이 실력을 눈치챘음에도 인정하지 않고 결국은 해고를 해 버렸다. 더욱 황당한 것은 꽃집 연맹의 회장이었던 주인이 M을 다른 모든 꽃집에서 일할 수 없도록 조치를 하였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꽃집 주인의 가혹함에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은 결과 더 큰 행운이 다가왔다.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영국식 꽃꽂이가 인연이 되어 유명한 호텔의 플로리스트로 오늘날까지 17년간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꿈을 꾸던 소녀였던 M이 꽃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까지 어려움이 많았고, 나 역시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때 막연히 좋아했던 환상 같은 것들이 현실이 된 것은 좋아하는 마음이 절실했었기 때문이리라.
     진로라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나 꿈보다는 세상의 평가에 눈치를 보고 마는 지금, 느리더라도 자신이 꼭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여 후회 없는 인생을 펼쳐가라고 ‘꽃집 아가씨’인 친구 M의 성공담을 들려주고 싶다. (*)
                                                     2014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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