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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Aug 27. 2021

점심시간

   지금이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딘가에서 솔솔 새어 나오는 마늘 향과 밥이 뜸 들여질 때만 나는 구수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무의식적으로 침샘에서 침이 고이기 시작하며 허기를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먼 곳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라도 배고파진 내 배는 정확히 신호를 보내었고, 이런 숨길 수 없는 욕구에는 표정 관리조차 되질 않았다. 한참을 거래에 열을 올리던 가겟집 주인아저씨는 나의 이 표정 때문이었을까, “점심시간인데 식사 좀 같이하실까요?”라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감사하기는 하지만 들켜버린 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동네 시장 안에 있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인테리어 가게 아저씨가 손님에게 맛난 냄새를 풍기는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인지, 아니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정집은 아닌 것 같고 가게 뒤에 부엌이 있는데 아내의 요리 냄새에 사랑이 느껴지셨던지 살짝 얼굴을 내민 아내의 애교스러운 미소에 행복한 표정을 감출 수 없어 쑥스러워하시며 나에게도 점심을 권하셨다. 고맙기는 하지만 다음에 정하기로 하고 서둘러 가게를 나와 버렸다. 가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지금 시각을 확인해 보니 딱 점심시간. 아저씨 앞에서 시계를 보는 것조차 뻔뻔스러울 것 같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아저씨의 황금 같은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행복한 점심시간을 갖는 아저씨의 기쁨을 고이고이 지켜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돌아볼 때 점심시간은 직장 생활과 학창 생활로 나눌 수 있는데 주부로서의 지금보다는 직장 생활 때의 기억이 너무 선명하여 다른 좋은 기억들이 모조리 잊혀 갔던 것 같다. 나의 첫 직장은 한국의 K 항공사였다. 일본에서 한국 회사에 다닐 수 있어서 기뻤고, 그것도 공항이 아니라 시내 사무실이어서 신기했다. 편도 2시간이라는 것이 가혹하긴 했지만, 어차피 살고 있던 교토에는 큰 회사가 많지 않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 테마치야나기出町柳 종점에서 케이한京阪 특급을 타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오사카 요도야바시淀屋橋였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혼마치本町에서 내린다. 그야말로 비행기 관련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순간. 그런데도 점심시간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만남은 나를 작게 만들었다. 아마도 내가 순진해 보였거나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그랬던 것 같다. 계속 듣고만 있었을 뿐인데도 선배님께 들켰는지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이야기해 주셨다. 내가 입사하기 전 10년 단위로 신입사원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지갑 사정은 달랐다. 당시 첫 월급으로 겨우 큰돈을 벌어 본 풋내기인 나는 여행을 위해 저금을 하고 싶었기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나머지만 동료들과 같이했다. 어느 날이었다. 항상 밥을 같이 먹던 J 선배 언니가 점심시간에 안 오는 것이 아닌가. 사무실에 가서 보니 아메리카노 한 잔만 마시며 계속 일만 하고 있었다. J 선배 언니는 10년간 승무원으로 있다, 사무직 부서로 옮겨 같이 일하게 된 분이고 내가 다니던 화물지점의 꽃이었다. 언니는 와인을 좋아해서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언제가 연말 파티 때 와인을 소개해 준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 아무튼 차를 좋아했던 나하고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A 선배 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J 선배 언니는 집이 원래 후쿠오카라 지금 오사카에서 월세로 살고 있는데 월급의 반 이상의 비싼 곳이라 생활비가 부족하여 월급일 일주일 전에는 점심 드실 돈도 없이 굶고 있다는 것이다. 나한테는 다이어트라 하셨기에, 모르는척하며 그 언니를 잘 지켜보았다. 그리고 몇 달 후 J 선배 언니의 결혼 청첩장을 받을 수 있었다. 언니 때문에 처음으로 오사카 리츠 칼튼 호텔이 어딘지 알게 되었다. 동시에 A 선배 언니는 입술에 상처가 난 것처럼 핏덩이가 굳어 있었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여직원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고 싶지만, 아직도 결혼 못 한 것이 스트레스인지 청첩장만 받으면 입술이 부어 이렇게 돼.”라고. 결국, 결혼 준비가 있는 동안 A 선배 언니는 갑자기 도시락이 좋아졌다며 거의 매일 도시락으로 함께 점심을 하자고 하셨다. 나는 그 언니가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기에 “외로우세요?”라고 물어보고 말았다. 그러자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니, 적적해.”라고. 나는 선배님과 같이 밥을 먹기에 외롭지 않은데 밥을 드시면서도 외롭다고 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직장생활에서의 점심시간은 계속 일이 생각나고 아직 긴장이 남아있어서 솔직해지기도 어려운 것 같다. A 선배 언니는 나보다 30살 이상의 나이 차가 나는 대선배였다. 다니고 있던 K 항공사가 69년에 민영화가 되었는데, 언니는 68년 입사로, 국영화 시절에 채용된 것이니 K 항공사 일본 오사카 지점의 전설이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런 언니지만 기밀문서만 다루다 보면 당연히 모든 사람이 어려워하고 본인도 외로운가 보다. 그래서 직장인들에게 있어 점심시간은 조심스럽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가로운 저녁 시간보다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짧고 한정된 소중한 시간이라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 같다. 그래서 그때의 여렸던 나의 마음에는 세상의 어려움이 느껴져 소화가 안 될 때도 있었지만 쌓여가는 점심시간의 횟수만큼 동료들을 알아가고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그때 기억이 남아있다는 건 아직도 그때의 점심시간이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리라.

   나중에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J 선배 언니와 점심을 먹으며 물어보았다. “왜 승무원이 되고 싶으셨나요?”라고. 언니는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온갖 별들이 아주 예뻐서 그래.”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언니는 너무도 순수하고 단순한 꿈을 갖고 있었다. 후쿠오카에서 예쁜 별을 보고 자라 그런 자신만의 꿈을 이룰 수 있었나 보다. 이렇듯 점심시간에는 판단할 수 없는 수많은 진실과 오해, 질투가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정리 과정 없이 단절되고 마는 아쉬움도 있다. 그런 복잡 다양한 화제를 맛있는 음식을 소화하듯 내 생활에 잘 녹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멋진 점심시간이자 풍요로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점심시간의 기억을 되살려 주신 우리 동네 인테리어 가게 아저씨는 그날 이후 주문한 것보다 조금 저렴하게 해 주신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는 가능한 아저씨의 점심시간을 피해서 방문해야겠다. 나도 점심밥을 준비하러 시장에 나가 봐야지. *

                                                                   201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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