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에서 귀국을 했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암에 걸렸지만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아내의 대학병원 진료 일자는 2주 뒤였다.
나와 아내는 출근을 했고, 아이들은 기관에 갔다.
회사에서 일을 했다.
중간중간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내에게 1시간마다 전화를 했다.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나마 마음이 진정됐다.
당연하고 익숙했던 나의 일상, 나의 아내, 나의 아이들.
심지어 때론 일상의 반복이 따분하다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왜 사람은 잃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일까?
자만했었다. 내 일상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가끔씩 불안했던 것 같다.
가정이 있고, 번듯한 직장이 있는 30대 중반의 나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사람이었고, 성공한 사람이었다.
너무 완벽해 보이는 삶이 깨질까 봐 때론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깨졌다.
근데 그 깨진 조각이 아내여서는 안 되었다.
나였어야 했다.
회사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내를 데리러 아내의 회사 앞으로 갔다.
암을 숨기고 회사생활을 하는 아내는 어떤 마음일까?
그토록 고대하던 5년 반 만의 복직인데, 다시 꿈이 꺾인 아내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아내의 회사 앞으로 데리러 온 건 6년 만이었다.
신혼 때 몇 번 데리러 온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아내는 사교적이고 밝은 사람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었다.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머무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가 바래지는 걸 난 왜 몰랐을까.
아내를 다시 살릴 수 있을까?
아내의 수술과 치료가 시작됐다.
비로소 나의 모든 것이 멈췄다.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아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나는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러 들어갔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아내가 안경을 쓰고 보기 전에 재빨리 치웠다.
아내는 강한 척했다.
내가 걱정하지 않게,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게.
나도 괜찮은 척하려 했다.
아내가 대학병원에서 2차 항암 주사를 맞던 날이었다.
아내가 주사를 맞을 동안 나는 소고기집을 예약했다. 한 동안 아내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할걸 알기에. 항암 주사액은 6시간 뒤부터 몸에 돈다. 그전엔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아내가 나왔고 며칠 입원하면서 요양할 암병원으로 이동 중이었다.
아차. 약국에 들르는 것을 잊은 것이 생각났다.
대학병원 근처 약국에만 있는 약이었고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야 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아내에게 고기를 먹여야 하는데.
암병원 입원 수속을 하고 다시 대학병원 근처 약국에 갔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시터 이모님 퇴근시간이 6시 반이었다. 그전까지는 집에 돌아가야 했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차는 막혔고, 결국 예약해 둔 소고기집은 취소하고 암병원 근처에 있는 소고기집으로 갔다. 정육식당처럼 냉장고 진열대에 있는 소고기를 골라 계산한 뒤, 자리로 가져가 구워 먹는 곳이었다.
20분 안에 먹고 아내를 암병원에 데려다준 뒤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을 맡아야 했다.
소고기를 구우려고 하는데 약간 상한 듯한 냄새가 났다. 나는 직원에게 얘기했다. 직원은 자기가 보기엔 괜찮다고 우겼다.
나는 직원에게 말했다.
"아내가 아파요. 아무거나 먹을 수 없어요. 좀 바꿔주세요."
그 순간이었다.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내에게 소고기 먹이는 것뿐인데. 이마저도 왜 이리 어려운지.
아내도 우는 것 같았다. 민머리를 가리려 깊이 눌러쓴 버킷모자 아래로 눈물이 보였다.
아내는 열심히 소고기를 먹었다. 일부러 나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직원은 결국 소고기를 바꿔줬다.
그깟 소고기가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