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야 잘 부탁해~~~
우리 가족이 산 땅은 47 에이커로 5만 7천 평이 넘는다. 엄~~~ 청 넓지만 사실상 절반은 보호구역으로 나무 하나 마음대로 심을 수도 자를 수도 없다.
땅을 사고 카운슬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중에 제일 눈이 띄었던 서류는 키울 수 있는 동물 리스트였다.
호주는 카운슬마다 적용하는 법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정부 방침이 있지만, 각주가 채택하는 것이 다르고 시드니의 경우는 NSW 주의 방침, 또 세분화해서 각 지역 카운슬마다 지켜야 하는 사항 다르다.
이번 팬데믹의 상황을 예로 들면 연방정부에서는 '이제 호주 내 여행을 자유롭게 한다'라고 발표했지만 퍼스가 있는 SA 서부호주 같은 경우는 주 경계를 폐쇄하고 열어주지 않았다. 카운슬 별로도 옆동네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적인데 우리 동네는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 경우도 있었다. 비즈니스를 하거나 주택을 짓거나 하는 등의 경우는 카운슬에 반드시 자세하게 문의해야 한다.
말 1마리, 닭 20마리, 개 2마리, 고양이 2마리…수십 장에 해당하는 이 서류에는 키울 수 있는 각종 동물과 수가 상세히 적혀있었다.
절반을 사용하더라도 2만 평이 넘는데 개 2마리 고양이 2마리… 밖에 키울 수 없다니 좀 황당했다.
호주는 동물 보호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특히 보호지역 근처에 건물을 짓고자 하면 철새의 움직임부터 땅의 미생물까지 조사하기 때문에 생물 조사만 몇 년이 걸린다.
땅에서 지내다 보니 캥거루가 보이기 시작했다. 캥거루들 보호하느라 사람이 피해본다는 생각이 들어 미운 마음이 들다가 문득 원래 이 땅의 주인은 캥거루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일 뿐이고 이 지구의 주인은 사실 자연이다.
전 주인은 모터사이클 선수였었다고 한다. 울퉁불퉁한 땅을 오토바이로 질주하며 즐기는데만 이 넓은 땅을 사용했었다. 옆집 사람은 와서 전 주인 때문에 너무 시끄러웠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오토바이로 질주하며 모험을 즐기던 전 주인은 어느 날 사고가 났고 헬기가 와서 응급실로 실어갔을 정도로 크게 다쳤고, 땅을 팔게 되었다는 게 부동산 아저씨의 설명이다.
어쩌면 땅이 너무 시끄러워 화가 났었나 보다.
땅에 이리저리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도 참으로 예쁘다.
캥거루 그리고 멋진 자연아, 우리는 너무 시끄럽지 않게 잘 사용하도록 할게. 앞으로 잘 지내보자 잘 부탁해~